“논산이 키워준 삶, 이제는 논산에 돌려주고 싶다”

1976년 제헌절 아침, 논산 강산동에서 태어난 최재훈은 스스로를 “한 번도 논산을 떠나본 적 없는 진짜 논산촌놈”이라고 소개한다.
그의 말투는 소박하지만 그 안에는 오래된 자부심이 담겨 있다. 도시의 화려함보다 사람 냄새 나는 골목과 오래된 인연의 온기를 더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 논산에서 태어나 논산에서 배우고, 논산에서 가정을 꾸리며 살아온 그의 삶은 곧 논산의 시간과 닮아 있다.
어린 시절만 해도 ‘논산촌놈’이라는 말이 싫었다고 한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었고 도시 아이들이 부러웠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천명의 나이를 넘긴 지금 그는 오히려 그 말이 가장 편안하고 든든하다고 이야기한다.
부창초등학교, 대건중학교, 대건고등학교, 건양대학교까지. 그의 모든 학창 시절은 논산 안에서 이어졌다.
그는 웃으며 자신을 “최고의 학연과 지연을 가진 인맥부자”라고 표현하지만, 정작 그의 진짜 자산은 오랜 시간 사람들과 쌓아온 신뢰와 의리다.
그가 가장 고민하는 문제 역시 논산의 ‘정주성’이다.
특히 청년 세대가 논산을 삶의 터전이 아니라 떠나야 할 공간으로 인식하는 현실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다.
그는 “청년 세대는 취업과 결혼, 육아 등 삶의 질에 대한 욕구가 큰 세대인데 지역이 그것을 채워주지 못하니 결국 떠날 수밖에 없다”며 “사람을 머물게 하는 힘은 결국 문화에서 나온다”고 강조한다.
그가 말하는 문화는 단순한 공연이나 축제를 뜻하지 않는다.
아이를 키우기 좋은 환경, 서로를 알고 돌보는 공동체, 지역에 대한 자부심과 기억까지 포함한 삶의 방식 전체를 의미한다. 그래서 그는 논산만의 문화적 정체성을 찾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좋은 아버지보다 든든한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
결혼 후 두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그의 삶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그는 좋은 아버지보다 ‘든든한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고 말한다. 청소년 시절 아버지의 부재가 남긴 상처 때문이었다. 언제든 기댈 수 있는 존재에 대한 그리움이 늘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만큼은 언제나 버팀목이 되어주고 싶었다.
두 아들은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모교인 부창초등학교에 입학했고, 나란히 전교학생회장을 맡으며 아버지의 가슴을 울컥하게 만들었다.
그때부터 그는 학교 현장에 깊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부창초등학교를 시작으로 논산중학교와 대건고등학교 학교운영위원회 활동에 참여하며 학교와 학부모, 교육청과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역할을 자처했다.
학교운영위원장과 학교운영위원장협의회장을 맡았던 그는 특유의 유연함과 친화력으로 학교 현장의 목소리를 행정과 연결했고, 아이들을 위한 사업이라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뛰어다녔다.
그는 “학교가 아이들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을 할 때만큼은 절차보다 응원이 먼저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의 주변 사람들은 그를 두고 “어디서든 사람을 연결하고 분위기를 살리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두 아들이 대건고등학교에 진학한 이후에는 학교 복지와 장학사업에도 관심을 넓혀갔다.
대건장학회 이사로 활동하며 선배들을 모시고 장학회의 살림을 맡아보면서 그는 ‘진짜 동문의 힘’을 배웠다고 한다.
혼자 잘되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끌어주는 공동체의 가치, 그리고 누군가에게 받았던 도움을 다시 다음 세대에게 돌려주는 책임을 그는 그 과정 속에서 체득했다.

“물을 마실 때 그 근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최재훈이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말은 바로 ‘음수사원 굴정지인’이다.
“물을 마실 때 그 근원을 생각하고, 우물을 판 사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그는 자신의 삶이 결코 혼자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언제나 곁에는 친구가 있었고 선배가 있었으며, 부모님처럼 자신을 아껴준 어른들이 있었다. 그들의 도움과 응원 속에서 지금의 자신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래서인지 그의 삶에는 늘 ‘감사’라는 단어가 따라다닌다.
누군가를 이기기보다 함께 가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관계를 소비하기보다 오래 지켜내려 한다. 사람을 통해 성장했고 사람 덕분에 버텨왔다는 사실을 그는 잊지 않는다.
이제 그는 자신을 키워준 동네에 보답하고 싶다고 말한다.
취암동과 내동, 반월동과 화지동, 덕지와 지산, 그리고 관촉동까지. 자신의 삶이 스며 있는 논산의 골목골목에 다시 힘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논산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습니다.
받은 것을 조금이라도 돌려드리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논산촌놈’이라는 그의 투박한 자기소개에는 결국 지역을 향한 애정과 책임감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마음의 중심에는 지금도 변함없이 ‘굴정지인’의 철학이 흐르고 있다.
- 전영주 편집장
“논산이 키워준 삶, 이제는 논산에 돌려주고 싶다”
1976년 제헌절 아침, 논산 강산동에서 태어난 최재훈은 스스로를 “한 번도 논산을 떠나본 적 없는 진짜 논산촌놈”이라고 소개한다.
그의 말투는 소박하지만 그 안에는 오래된 자부심이 담겨 있다. 도시의 화려함보다 사람 냄새 나는 골목과 오래된 인연의 온기를 더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 논산에서 태어나 논산에서 배우고, 논산에서 가정을 꾸리며 살아온 그의 삶은 곧 논산의 시간과 닮아 있다.
어린 시절만 해도 ‘논산촌놈’이라는 말이 싫었다고 한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었고 도시 아이들이 부러웠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천명의 나이를 넘긴 지금 그는 오히려 그 말이 가장 편안하고 든든하다고 이야기한다.
부창초등학교, 대건중학교, 대건고등학교, 건양대학교까지. 그의 모든 학창 시절은 논산 안에서 이어졌다.
그는 웃으며 자신을 “최고의 학연과 지연을 가진 인맥부자”라고 표현하지만, 정작 그의 진짜 자산은 오랜 시간 사람들과 쌓아온 신뢰와 의리다.
그가 가장 고민하는 문제 역시 논산의 ‘정주성’이다.
특히 청년 세대가 논산을 삶의 터전이 아니라 떠나야 할 공간으로 인식하는 현실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다.
그는 “청년 세대는 취업과 결혼, 육아 등 삶의 질에 대한 욕구가 큰 세대인데 지역이 그것을 채워주지 못하니 결국 떠날 수밖에 없다”며 “사람을 머물게 하는 힘은 결국 문화에서 나온다”고 강조한다.
그가 말하는 문화는 단순한 공연이나 축제를 뜻하지 않는다.
아이를 키우기 좋은 환경, 서로를 알고 돌보는 공동체, 지역에 대한 자부심과 기억까지 포함한 삶의 방식 전체를 의미한다. 그래서 그는 논산만의 문화적 정체성을 찾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좋은 아버지보다 든든한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
결혼 후 두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그의 삶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그는 좋은 아버지보다 ‘든든한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고 말한다. 청소년 시절 아버지의 부재가 남긴 상처 때문이었다. 언제든 기댈 수 있는 존재에 대한 그리움이 늘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만큼은 언제나 버팀목이 되어주고 싶었다.
두 아들은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모교인 부창초등학교에 입학했고, 나란히 전교학생회장을 맡으며 아버지의 가슴을 울컥하게 만들었다.
그때부터 그는 학교 현장에 깊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부창초등학교를 시작으로 논산중학교와 대건고등학교 학교운영위원회 활동에 참여하며 학교와 학부모, 교육청과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역할을 자처했다.
학교운영위원장과 학교운영위원장협의회장을 맡았던 그는 특유의 유연함과 친화력으로 학교 현장의 목소리를 행정과 연결했고, 아이들을 위한 사업이라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뛰어다녔다.
그는 “학교가 아이들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을 할 때만큼은 절차보다 응원이 먼저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의 주변 사람들은 그를 두고 “어디서든 사람을 연결하고 분위기를 살리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두 아들이 대건고등학교에 진학한 이후에는 학교 복지와 장학사업에도 관심을 넓혀갔다.
대건장학회 이사로 활동하며 선배들을 모시고 장학회의 살림을 맡아보면서 그는 ‘진짜 동문의 힘’을 배웠다고 한다.
혼자 잘되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끌어주는 공동체의 가치, 그리고 누군가에게 받았던 도움을 다시 다음 세대에게 돌려주는 책임을 그는 그 과정 속에서 체득했다.
“물을 마실 때 그 근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최재훈이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말은 바로 ‘음수사원 굴정지인’이다.
“물을 마실 때 그 근원을 생각하고, 우물을 판 사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그는 자신의 삶이 결코 혼자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언제나 곁에는 친구가 있었고 선배가 있었으며, 부모님처럼 자신을 아껴준 어른들이 있었다. 그들의 도움과 응원 속에서 지금의 자신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래서인지 그의 삶에는 늘 ‘감사’라는 단어가 따라다닌다.
누군가를 이기기보다 함께 가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관계를 소비하기보다 오래 지켜내려 한다. 사람을 통해 성장했고 사람 덕분에 버텨왔다는 사실을 그는 잊지 않는다.
이제 그는 자신을 키워준 동네에 보답하고 싶다고 말한다.
취암동과 내동, 반월동과 화지동, 덕지와 지산, 그리고 관촉동까지. 자신의 삶이 스며 있는 논산의 골목골목에 다시 힘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논산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습니다.
받은 것을 조금이라도 돌려드리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논산촌놈’이라는 그의 투박한 자기소개에는 결국 지역을 향한 애정과 책임감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마음의 중심에는 지금도 변함없이 ‘굴정지인’의 철학이 흐르고 있다.
- 전영주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