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지역미디어지원사업] 유보통합 기반 생태유아교육 ‘생태놀이를 말하다’ 5

2026-09-04

[2026 지역미디어지원사업] 유보통합 기반 생태유아교육 ‘생태놀이를 말하다’ 5


페트병·흙·맨발·봉숭아…자연이 놀이터가 되다


작은별·은혜·금풍·원광어린이집에서 만난 여름 생태놀이

설명보다 경험…놀이 속에서 자란 생명·절약·공동체 감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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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병에 작은 구멍을 뚫자 물총이 됐다. 흙에 모종을 심고 기다리자 아이들의 밥상에 채소가 올랐다. 신발을 벗자 발바닥은 햇볕과 그늘의 온도 차이를 알아냈고, 숲에서 따온 봉숭아꽃은 아이들의 손톱을 붉게 물들였다.

작은별어린이집의 재활용품 물놀이, 은혜어린이집의 텃밭 활동, 금풍어린이집의 맨발걷기, 원광어린이집의 봉숭아물들이기. 놀이의 재료와 장소는 달랐지만 4곳 현장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교사가 정답을 먼저 알려주지 않았고, 아이들은 손과 발, 눈과 코, 온몸으로 자연과 사물을 만났다.

버려질 물건에서 새로운 쓰임을 찾아내고, 작은 생명을 돌보며 기다리고, 땅의 촉감과 온도를 몸으로 구별하고, 계절이 준 색을 손끝에 담았다. 생태놀이는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결론부터 가르치지 않았다. 아이들이 직접 겪고 발견한 뒤 스스로 그 결론에 닿도록 했다.





구멍 하나에서 시작된 여름 실험실


작은별어린이집 아이들의 손에는 문구점에서 산 물총이 없었다. 대신 500㎖ 페트병과 다 마신 커피컵이 들려 있었다. 임계향 교사가 송곳으로 뚫어 준 작은 구멍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자 아이들은 “우와, 물이 멀리 나가요!”라며 환호했다.

놀이의 시작은 질문이었다.

“이 물건들은 다 사용하고 나면 어떻게 될까?”

아이들은 “버려요”, “재활용해요”라고 답했다. 교사는 다시 물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왜 구멍이 뚫려 있을까?”

“물총으로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구멍이 많으니까 분수처럼 나올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쓰임이 끝난 물건으로 보였던 페트병과 커피컵이 질문 하나를 거치자 새로운 놀잇감으로 바뀌었다.

잔디밭은 곧 작은 실험실이 됐다. 아이들은 페트병을 세게 누르거나 약하게 누르며 물줄기의 세기와 거리를 비교했다. 병을 높이 들거나 낮추면서 물이 떨어지는 위치가 달라지는 것도 확인했다. 구멍이 여러 개 뚫린 커피컵에서는 물이 비처럼 쏟아졌다.

같은 물과 비슷한 용기를 사용했지만 결과는 달랐다. 구멍의 크기와 개수, 누르는 힘과 높이에 따라 물의 모습이 달라진다는 것을 아이들은 놀이 속에서 알아냈다. 방아쇠를 당기면 정해진 물줄기가 나오는 완제품 장난감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탐구였다.

물이 줄어들자 아이들은 스스로 물통으로 가서 다시 물을 채웠다. 뚜껑을 제대로 닫지 않아 물이 새기도 했다. 바닥에 고인 물은 다시 모아 놀이에 사용했다.

“왜 뚜껑을 꼭 닫아야 할까?”

“물이 새니까요.”

“물을 아껴야 하니까요.”

물을 아껴 쓰라는 훈계 끝에 나온 말이 아니었다. 물이 새고 모자라는 경험을 한 아이들이 스스로 내린 결론이었다.

임계향 교사는 구멍을 뚫어 주고 안전을 살피는 데까지만 개입했다. 물을 얼마나 담을지, 어떤 용기를 고를지, 어떤 방식으로 놀이할지는 아이들에게 맡겼다. 다만 친구의 얼굴이나 머리를 향해 물을 뿌리는 행동에는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물을 뿌릴 때는 친구와 거리를 두고 서로 괜찮은지 먼저 확인해 보자.”

그 뒤 아이들 사이에서는 “여기서 뿌려도 돼?”라는 말이 오가기 시작했다. 교사가 정해 준 규칙이 아이들 스스로 지키고 확인하는 공동체의 약속으로 바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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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고 돌보고 나누며 배운 생명의 순환


은혜어린이집 텃밭에는 모자를 눌러쓴 작은 농부들이 모였다. 만 2세부터 만 5세까지의 아이들은 상추와 고추, 깻잎, 옥수수, 참외, 고구마를 심고 돌보며 ‘텃밭에서 식탁까지’ 이어지는 먹을거리의 여정을 경험했다.

이계현 교사는 아이들에게 물었다.

“우리가 먹는 참외와 상추는 어디에서 자랄까요?”

“이 채소를 처음부터 마트에서 볼 수 있었을까요?”

아이들의 시선은 진열대에서 흙으로 옮겨 갔다. 텃밭에 나가기 전에는 식물을 함부로 뽑거나 밟지 않기, 필요한 만큼만 수확하기, 곤충과 작은 생물을 보호하기, 수확한 채소는 깨끗이 씻어 먹기 등의 약속도 함께 정했다.

아이들은 작은 구멍을 파고 모종을 넣은 뒤 흙을 덮고 물을 주었다.

심는 일보다 더 긴 배움은 돌보는 과정에서 시작됐다. 아이들은 며칠 동안 물을 주고 잎과 열매의 변화를 살폈다. 초록색 고추를 본 아이는 “빨간색이 되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하나 봐”라고 말했다. 참외가 자란 모습을 본 아이는 “우리가 물을 주고 돌봐줘서 많이 자란 것 같아”라며 자신의 행동과 생명의 변화를 연결했다.

어른에게 돌봄을 받던 아이가 자신보다 작고 약한 생명을 돌보는 사람으로 자리바꿈한 것이다. 은혜어린이집 텃밭에서는 채소와 함께 책임감도 자라고 있었다.

수확하는 날에는 고구마 줄기를 잡은 아이들의 외침이 이어졌다.

“고구마가 땅속에서 나와요.”

“여러 개가 달려 있어요.”

고구마를 캐고 남은 줄기는 곧 줄다리기 도구가 됐다. 친구들과 “영차, 영차” 힘을 모아 당기며 웃었고, 놀이를 마친 줄기는 다듬어 나물로 먹거나 다시 흙으로 돌려보냈다.

수확한 채소는 아이들이 직접 씻었다. 채소를 씻은 물은 하수구에 버리지 않고 텃밭으로 가져가 다시 사용했다. 다듬고 남은 잎과 시든 모종, 벌레 먹은 상추는 퇴비가 됐다. 모양이 고르지 않은 참외도 먹기 좋게 잘라 나눴다.

마지막은 비빔밥이었다. 아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채소를 골라 밥 위에 올리고 직접 비볐다. 평소 채소를 남기던 아이도 이날은 그릇을 비웠다. 자기가 심고 물을 주며 기다렸다가 직접 수확한 채소였기 때문이다.

오선화 원장은 “텃밭에는 버릴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곳에서는 버린다는 말 대신 ‘돌아간다’고 표현한다. 남은 줄기와 잎은 놀이와 음식이 되거나 흙으로 돌아가 다음 생명을 키운다. 필요한 만큼만 거두고 남은 것을 제자리로 돌려보내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자연의 순환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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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을 벗자 발바닥이 땅을 읽었다


논산시민운동장 편백 황톳길에서는 금풍어린이집 5∼7세 아이들이 신발과 양말을 벗었다. 김예진 교사가 “오늘은 우리 몸의 아주 중요한 곳을 이용해 자연을 만나 볼 거예요. 어디일까요?”라고 묻자 아이들은 한목소리로 “발이요!”라고 답했다.

걷기 전에는 발목을 돌리고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발바닥을 두드렸다.

“발아, 오늘 잘 부탁해!”

아이들은 뛰지 않고 천천히 걷기, 발밑의 돌과 나뭇가지를 살피기, 친구를 밀거나 장난치지 않기 등의 약속도 정했다. 안전을 위한 약속이었지만 자연을 만나는 태도를 배우는 시간이기도 했다.

황토와 잔디, 모래, 나뭇잎이 깔린 길을 걸으면서 아이들의 말이 쏟아졌다.

“발바닥이 간질간질해요.”

“흙이 미끌미끌해요.”

“돌은 딱딱해요.”

한 아이는 햇빛이 비치는 곳과 그늘진 곳을 오가다 걸음을 멈췄다.

“선생님, 여기 흙은 따뜻하고 저기는 차가워요.”

온도계나 그림책이 아니라 발바닥으로 알아낸 사실이었다. 신발을 신고 빠르게 지나갔다면 느끼지 못했을 작은 차이를 맨발과 느린 걸음이 찾아냈다.

활동의 절반은 걷기보다 멈추는 데 쓰였다. 아이들은 나뭇잎과 돌, 나뭇가지를 살폈다. 살아 있는 꽃과 식물은 꺾지 않고 떨어진 자연물만 필요한 만큼 주웠다. 같은 나뭇잎도 어떤 것은 까칠하고 어떤 것은 부드럽다는 사실을 서로의 말과 손끝으로 확인했다.

걷기가 끝난 뒤에는 친구와 발바닥을 마사지하고 돗자리에 누워 하늘을 바라봤다. 눈을 감고 얼굴을 스치는 바람과 숲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에도 귀를 기울였다.

활동을 마친 아이들은 사용한 자리를 처음 왔을 때처럼 정리한 뒤 함께 외쳤다.

“자연아, 고마워!”

“다음에 또 만나자!”

자연을 다시 만날 때 어떤 마음이어야 하느냐는 물음에는 “소중하게요”, “깨끗하게 사용해요”, “자연을 아껴 줘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자연보호 구호를 먼저 외운 것이 아니라 흙과 풀, 바람과 새소리를 온몸으로 만난 뒤 나온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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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숭아꽃이 가르쳐 준 색과 기다림


원광어린이집 아이들은 여름 아침 충혼의 숲을 찾았다. 명상 음악이 흐르는 숲 그늘에서 성경미 교사가 물었다.

“옛날에는 무엇으로 손톱에 물을 들였을까요?”

아이들이 만난 답은 매니큐어가 아니라 봉숭아꽃이었다.

아이들은 꽃과 잎은 필요한 만큼만 따기, 절굿공이로 장난치지 않기, 봉숭아를 입에 넣지 않기 등의 약속을 정한 뒤 숲을 걸었다. 마음에 드는 꽃과 잎을 직접 골라 바구니에 담으며 색과 모양, 촉감을 살폈다.

“분홍색 꽃이 제일 예뻐요.”

“꽃잎이 부드러워요.”

모아 온 봉숭아꽃과 잎에 백반을 넣고 절구로 찧자 꽃잎이 부서지며 색이 배어 나왔다.

“쿵덕쿵덕 찧으니까 진한 분홍색 물이 나와요.”

“풀 냄새와 꽃 냄새가 같이 나요.”

아이들은 분홍색 꽃잎이 붉은 즙으로 변하는 과정을 눈앞에서 지켜봤다. 절굿공이를 번갈아 들며 힘을 조절하고 친구와 순서를 나누는 동안 전통 생활도구를 온몸으로 경험했다.

찧은 봉숭아를 손톱 위에 올리고 비닐과 실, 반창고로 감싼 뒤에는 기다림이 시작됐다.

버튼을 누르면 곧바로 결과가 나타나는 환경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기다려야만 얻을 수 있는 색은 특별했다. 교사가 참으라고 지시해서가 아니라 어떤 색이 나올지 궁금한 마음이 아이들을 기다리게 했다.

비닐을 풀자 아이들은 서로의 손끝을 맞대며 색을 비교했다.

“제 손톱은 주황색이에요.”

“진짜 봉숭아물이 들었어요!”

같은 꽃과 같은 절구에서 나온 즙이었지만 손톱마다 물든 빛깔과 진하기는 달랐다. 원광어린이집은 활동을 가정과도 연결했다. 첫눈이 올 때까지 봉숭아물이 남아 있는지 부모와 함께 관찰하도록 안내한 것이다. 여름 숲에서 얻은 색이 아이의 손톱에 머물며 가을과 겨울을 잇는 계절의 기록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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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보다 경험, 머리보다 몸


4곳의 어린이집 놀이는 우리나라 생태유아교육이 오랫동안 강조해 온 철학과 맞닿아 있다.

생태유아교육을 체계화한 임재택 부산대 명예교수는 교육의 지향을 ‘아이 살림·자연 살림·공동체 살림’으로 설명해 왔다. 아이를 아이답게 되돌리는 일과 자연을 되살리는 일, 공동체를 회복하는 일이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는 관점이다.

페트병을 물총으로 다시 사용하는 일은 자원을 살리는 경험이다. 텃밭에서 생명을 돌보고 친구와 수확물을 나누는 일은 아이와 공동체를 함께 살리는 과정이다. 맨발로 흙을 밟고 봉숭아꽃으로 손톱을 물들이는 놀이는 자연의 시간과 아이의 몸을 다시 이어 준다.

유아교육에서 몸의 의미를 연구해 온 김은주 부산대 교수의 논의처럼 유아는 머리로 개념을 배우기에 앞서 몸으로 세계를 만난다. 흙의 말랑함과 돌의 단단함, 물줄기의 힘, 절굿공이의 무게, 깻잎과 봉숭아의 향기가 아이들에게는 곧 지식이 된다.

생태유아교육에서 교사의 역할도 달라진다. 교사는 아이 대신 결과를 만들어 주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고 기다리며, 아이가 스스로 발견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하는 사람이다. 안전하거나 꼭 필요한 순간에는 개입하지만 놀이의 방법과 결론까지 정해 주지는 않는다.

그 빈자리에서 아이들의 생각이 자란다. 페트병은 물총과 분수가 되고, 고구마 줄기는 줄다리기 도구가 된다. 맨발은 온도계가 되고, 손톱은 계절의 변화를 기록하는 달력이 된다.


유보통합 시대, 어떤 교육을 함께 만들 것인가


유보통합은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관리체계를 합치는 행정적 변화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모든 영유아에게 어떤 성장 경험을 보장할 것인지, 우리 사회가 바라는 좋은 교육은 무엇인지 함께 묻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 답을 거창한 시설이나 비싼 교구에서만 찾을 필요는 없다. 다 마신 페트병과 커피컵, 텃밭의 흙과 채소, 가까운 숲길과 제철 봉숭아꽃만으로도 아이들은 탐구하고 기다리며 협력한다. 물과 먹을거리의 소중함을 깨닫고, 자연과 친구에게 먼저 허락을 구하는 법도 배운다.

4곳의 어린이집 여름 생태놀이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더 가르칠 것인가보다 무엇을 되돌려줘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자연을 만날 시간, 직접 만들고 실패할 기회, 온몸으로 느낄 자유, 그리고 스스로 답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 주는 어른이다.

페트병의 구멍 하나에서 시작된 물줄기, 흙에서 밥상까지 이어진 채소, 맨발로 읽은 땅의 온도, 첫눈을 기다리는 봉숭아빛 손톱. 아이들이 손끝과 발끝으로 만난 작은 경험들이 생명을 존중하고 자원을 아끼며 더불어 살아가는 힘으로 자라고 있었다.



- 여병춘, 여재민 공동취재 

- 도움말 유향란 인동어린이집 원장 (유아교육학 박사)

(이 기획기사는 2026년도 충청남도 지역미디어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취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