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지역미디어지원사업] 유보통합 기반 생태유아교육 ‘생태놀이를 말하다’ 2

2026-05-17

모내기부터 목공까지… 삶으로 배우는 생태교육

인동어린이집의 하루에서 유아교육의 내일을 묻다






유아교육의 현장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유보통합이라는 거대한 정책 흐름 앞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물려줄 것인지를 묻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학습량 경쟁과 디지털 과몰입, 자연으로부터의 단절이 일상이 된 시대에 유아교육은 무엇을 회복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2010년 개원 이래 15년간 생태유아교육 한 길을 걸어온 인동어린이집을 찾았다. 화려한 시설도, 특별한 교구도 없는 이곳에서 아이들의 하루는 교실 책상 위가 아니라 흙과 바람, 사람과 공동체 속에서 펼쳐진다. 자연 속에서의 체험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다. 몸으로 익히고 손으로 배우며, 삶의 태도를 만들어 가는 교육이다.

인동어린이집의 생태유아교육을 삶교육·관계교육·앎교육이라는 세 가지 축으로 소개한다.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힘을 배우고, 사람과 관계 맺는 법을 익히며, 생명과 문화를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교육 철학이 현장 전체에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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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몸과 마음으로 살아내는 삶교육


인동어린이집의 하루는 아침 등원부터 일반적인 풍경과 다르다. 아이들은 스스로 신발을 정리하고, 가방과 물통, 손수건, 식판 매트를 제자리에 둔다. 교사가 대신 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한다”는 생활 철학이 자연스럽게 일과 속에 녹아 있다.

아침 새참 시간도 단순한 간식 시간이 아니다. 유기농·로컬푸드 먹거리로 몸과 뇌를 깨우고 자유롭게 놀이를 시작하는 시간이다. 아이들은 서두르지 않는다. 하루의 리듬을 몸으로 천천히 열어간다.

아침모임에서는 도인법과 아리랑 체조 등 바깥으로 나가기 전에 꼭 거치는 몸짓놀이가 이어진다. 몸과 마음을 함께 움직이며 서로를 존중하는 공동체 감각을 익힌다. 단순한 체조가 아니라 나의 몸과 감정, 그리고 관계를 함께 연결하는 교육이다.

이후 시작되는 바깥놀이는 생태교육의 핵심이다. 공터와 흙산, 정원 텃밭은 단순한 체험장이 아니라 생명과 먹거리, 돌봄과 순환을 배우는 살아 있는 교실이다. 아이들은 채종 텃밭에서 토종 씨앗을 심고 기른다. 우리 토종 씨앗 하나가 자라 꽃이 되고 다시 씨앗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몸으로 경험하며 생명의 순환을 배운다. 닭에게 먹이를 주고 물을 갈아주는 일도 중요한 일과다. 생명을 돌본다는 것은 단순히 귀여워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책임지는 일이라는 것을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배워간다.

화장실에 비누가 떨어지면 아이들이 직접 비누를 만든다. 제철 식재료를 만나 간식거리를 함께 만들어 보는 시간에는 조리사님을 도와 식재료를 다듬으며 누군가의 수고에 대한 감사와 먹거리의 소중함도 자연스럽게 몸에 새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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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춘에 씨앗을 묻고 동지에 팥죽을 끓이다… ‘해의 달력’을 사는 아이들


이곳 아이들에게 한 해는 1월·2월·3월이라는 숫자로 흐르지 않는다. 아이들의 한 해는 입춘에서 시작해 대한에서 마무리되는 24절기, 바로 ‘해의 달력’을 따라 흐른다.

봄, 입춘이면 아이들은 ‘입춘대길’을 직접 붓으로 써서 어린이집 대문에 붙인다. 우수가 지나면 토종씨앗을 지켜온 마을 여성농민회의 손길을 빌어, 아이들은 채종 텃밭에 첫 토종 완두콩을 심으며 한 해 농사의 첫 호흡을 시작한다. 여름, 소만과 망종 무렵에는 지역의 손모내기 농업을 계승해온 농부와 함께 모내기가 펼쳐진다. 발을 걷고 논에 들어가 직접 모를 심으며 아이들은 ‘쌀은 마트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는 진실을 몸으로 깨닫는다. 가을, 추석에는 조부모님을 어린이집으로 초대해 함께 송편을 빚고 강강술래를 돌리며 보름달을 함께 본다. 상강이 가까워지면 김장 준비가 시작된다. 겨울, 동지에는 함께 팥죽을 끓이고 나누어 먹는다. 대한의 추위 속에서 아이들은 봄을 기다리는 법, 곧 쉼과 기다림의 미덕을 익힌다.

이 땅의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를 몸으로 새기는 아이들은 여전히 자라나고 있다. 다른 유아교육 현장에서도 충분히 시도해볼 수 있는, 가장 오래되었으면서도 가장 미래적인 교육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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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인법·서예·활쏘기… 우리 것을 사랑하는 아이들로, 놀면서 잇는다


인동어린이집의 일과 곳곳에는 우리 전통문화가 자연스럽게 흐른다. 영어 알파벳보다 먼저 붓을 잡고, 키즈카페보다 먼저 활시위를 당기며, 스마트폰 게임보다 먼저 도인법으로 하루를 연다.

도인법(導引法)은 우리 선조들이 수천 년간 몸과 마음을 다스려온 전통 양생법이다. 서양식 스트레칭이나 체조와 달리, 호흡과 동작을 하나로 연결하며 자신의 몸을 느끼는 시간이다. 아이들은 도인법을 통해 ‘내 몸의 주인은 나’라는 감각을 어릴 때부터 익힌다. 이어지는 아리랑 체조와 예절 놀이도 같은 결이다. 우리 가락에 몸을 맡기고, 절하고 인사하는 법을 놀이처럼 익히며 몸과 마음, 관계를 함께 연결하는 교육이 이루어진다.

서예 시간은 마을의 서예가 선생님과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모포를 깔고 그 위에 한지를 펼친 뒤 붓을 잡고 먹을 갈며 한 획 한 획을 천천히 그어낸다. 집중력과 인내, 그리고 마음의 호흡도 함께 익힌다. AI가 글을 대신 써주는 시대일수록, 직접 붓을 잡고 한 글자를 써내는 경험은 아이의 내면을 단단하게 다져준다.

형님반 아이들은 우리 지역의 문화유산인 ‘덕유정(德裕亭)’ 활터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사범님께 먼저 활을 잡는 몸가짐과 예절을 배우고, 그 다음 안전하게 활시위를 당기는 법을 익힌다. 활쏘기는 우리 민족의 정신문화가 압축된 전통 무예다. 활을 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몸을 가지런히 하고, 마음을 비우고, 한 순간에 집중해야 한다. 

유 원장은 강조한다. “아이들에게 가르치려 들면 전통은 박물관이 되지만, 함께 놀면 전통은 일상이 됩니다.” 이러한 실천은 한 어린이집만의 특색이 아니다. 사라져가는 우리 것을 다음 세대에게 어떻게 살아 있는 모습으로 건넬 것인가, 모든 유아교육 현장이 함께 고민해야 할 시대적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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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가 와도 밖으로 나가는 아이들… 자연 속에서 배우는 생명의 감각


 아이들은 비가 온다고 해서 실내에만 머물지 않는다. 망설임 없이 비옷을 챙겨 입고, 선생님과 함께 자연스럽게 바깥으로 나갔다. 오히려 비가 오는 날 더 진해진 초록과 맑아진 공기 속으로 나간다. 젖은 흙냄새를 맡고,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자연의 변화를 몸으로 느낀다.

현장 교사들은 ‘날씨를 탓하지 않는 아이로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맑은 날만 좋은 것이 아니라 비 오는 날에도 자연은 살아 있고, 그 속에서 아이들은 또 다른 감각을 배우기 때문이다.

생태교육은 환경 보호를 외치는 교육이 아니다.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감각을 회복하는 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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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님이 동생의 손을 잡는다… 공동체 속에서 배우는 관계교육


인동어린이집의 또 다른 특징은 노인과 아동의 상호작용, 그리고 혼합연령 중심의 공동체 문화다. 형님·동생 짝꿍제가 일상적으로 운영된다. 형님은 동생의 손을 잡고 산책을 하며, 책을 읽어주고 낮잠 준비를 함께한다. 형님은 돌봄과 책임을 배우고, 동생은 안정감과 신뢰 속에서 성장한다. 경쟁보다 배려가 먼저 배우는 가치가 된다.

특히 산책 시간은 관계교육의 중요한 장면이다. 손을 잡고 걷는 과정 속에서 아이들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를 느낀다.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공동체의 감각을 몸으로 익히는 시간이다.

노인과 아이가 함께하는 세대교류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어르신들은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놀이를 하며 삶의 경험을 전한다. 아이들은 세대를 존중하는 태도를 배우고, 어르신들은 공동체의 따뜻함을 다시 느낀다. 노인과 아동이 자연스럽게 만나는 일상, 그리고 혼합연령 통합운영 역시 모두 같은 철학에서 비롯된 실천이다.

유향란 원장은 박사학위 논문에서 녹색식생활 기반 인성교육활동이 유아의 생명존중인식, 공동체의식, 배려행동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학문적으로 입증한 바 있다. 생태유아교육은 결국 ‘혼자 잘 사는 아이’가 아니라 ‘함께 살아갈 줄 아는 아이’를 키우는 교육이라는 철학이 곳곳에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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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전체가 아이들의 학교가 되다… 예술가·농부·어르신이 함께 만드는 배움


오후가 되면 배움은 어린이집 울타리를 넘어 마을 전체로 확장된다. 지역의 서예가와 한국화가, 도예가와 조각가, 극단 연출가, 스포츠 강사와 밧줄 전문가, 농부와 목공인, 마을의 어르신이 아이들의 선생님이 된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마을 사람들과 전문가들이 돌아가며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다함께 돌봄’과 ‘마을전문가 요일제’가 운영된다. 아이들은 전문가에게 기술만 배우는 것이 아니다. 요즘 유아교육은 아이들의 삶보다 교육 자체에만 초점이 맞춰지기 쉽다. 아이를 단지 ‘발달시켜야 할 존재’로만 바라보는 시선 속에서, 이곳의 아이들은 스스로 살아내고 창조하는 존재로 자라간다. 마을 속 어른들과 관계를 맺으며 지역 안에서 살아가는 감각을 자연스럽게 배워가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어린이집을 단순한 보육기관이 아니라 마을과 가족, 지역 자원을 연결하는 ‘아이살림의 집’으로 바라본다. 교사는 아이를 통제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의 삶을 함께 지지하는 조력자다. 부모와 마을, 교사와 지역사회가 함께 아이를 키우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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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밥했어요’를 자랑하는 아이들… 일상이 곧 생태감수성 교육


텃밭 가꾸기와 모내기는 그 자체로 식생활교육의 시작이다. 아이들은 텃밭에서 작물을 기르고 수확하며, 제철에 나는 식재료로 우리 조상들이 먹어온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햄버거와 피자가 일상이 된 시대에 우리 입맛과 우리 식문화를 몸으로 기억하는 일, 이것 또한 작은 전승의 자리다.

특히 모내기 체험은 생태유아교육의 상징적인 활동 중 하나다. 논에 직접 들어가 모를 심는 경험은 아이들에게 생명의 무게와 먹거리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마트에서 쌀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땀과 시간, 자연의 순환 속에서 밥 한 공기가 완성된다는 사실을 몸으로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은 직접 장보기도 경험하며, 음식이 식탁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손길과 시간이 필요한지를 자연스럽게 배운다.

식사 후에는 소금양치와 정리정돈까지 스스로 한다. 음식을 남기지 않아 음식쓰레기를 줄이고, 남은 잔반은 어린이집의 닭에게 돌아간다. 작은 순환이 일상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셈이다. 물저금통으로 물 아껴 쓰기, 재사용하기, 천연비누 만들기, 천연음료 만들기 같은 작은 실천들은 ‘지구지킴이 실천 약속’을 통해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아이들은 ‘완밥했어요’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생태교육은 거창한 환경운동이 아니다. 밥 한 끼를 남기지 않는 일, 물 한 컵을 아껴 쓰는 일, 씨앗 하나를 끝까지 돌보는 일 같은 작은 생활습관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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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를 믿는 것에서 교육은 시작된다’


인동어린이집의 하루는 교사가 앞에서 끌고 가는 시간이 아니었다. 아이를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존재로 믿는 것, 그 믿음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고 있었다. 아이들은 하루 속에서 끊임없이 선택하고 움직인다. 자신의 물건을 스스로 챙기고, 생명을 돌보고, 동생의 손을 잡고, 밥상을 준비하며 살아가는 연습을 반복한다.

생태유아교육은 자연을 배우는 교육이 아니다. 자연과 사람, 그리고 우리 것을 함께 배우며 삶을 살아내는 힘을 키우는 교육이다. 기후위기와 AI가 만든 빠른 변화의 시대 속에서 이 교육은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어떻게 더 빨리 성장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다음 세대에게 건넬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 여병춘, 여재민 공동취재 

- 도움말 유향란 인동어린이집 원장 (유아교육학 박사)

(이 기획기사는 2026년도 충청남도 지역미디어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취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