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정월대보름 스케치] 비 뚫고 타오른 논메들 달집, 요원의 불길

2026-03-09

정월대보름날 논산 어디서, 뭔 일이

사라지는 공동체정신 되살려주는 불씨들 

대나무 빵 소리에는 속 뻥 뚫리는 기분

570c1a5dcf237.jpg


논산의 대보름행사도 달집태우기 소원행사로 대표된다. 올해 불놀이는 15개 읍면동에서 절반 정도인 8개 지역에서 벌어졌다. 올해 정월대보름은 3월 3일 화요일, 이날 개기월식이 되면서 달빛이 붉어졌다. 이 우주쇼를 두고 세간에서는 ‘36년 만의 블러드문’이라며 왁자지껄했다. 

논산은 대보름 이틀 전인 3월 1일부터 들썩였다. 강경에서 3·1절 만세행사가 4년 만에 재개되었는데, 이날 오후 대보름행사 첫 테이프를 끊은 곳은 연산면이다. 연산백중놀이보존회가 2시부터 연산천 체육공원에서 행사를 시작하였다. 다리 밑에서 아이들은 연 날리고 풍물단 소리는 동네사람들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상월면은 2일로 예정했으나 비 소식에 하루 앞당겼는데, 인기짱은 역시 상월 군고구마였다.


af9cabc8175ba.jpg

1808e05c4b473.jpg

(연산천변에서 연 날리고(상), 깡통 쥐불놀이하고(하)....)


빗속에서도 젖지 않는 전통, 대보름달


나머지 동네는 2일날 네시 안팎으로 진행하였다. 비가 왔지만 대부분 속행하였다. 코로나 때도 멈추지 않았던 노성면 호암2리도 우중강행군이었고, 벌곡 어곡리, 연무 고내리, 부적 충곡리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달집을 비닐로 싸두었다가 점화 시점에 걷어내면서 불 지핀 곳도 있고 그냥 비 맞히면서도 나름의 비책을 마련한 곳도 있었다. 광석면은 갈산리 달집이 유명했는데 코로나 등으로 유야무야해지자 그 바통을 이사1리가 이어받은 모양새다. 이사리도 4~5년 전 작은 달집으로 하다말다 하다가, 올해는 보란 듯 동네 규모로 키웠다. 2일날 저녁에는 제사만 지내고 오곡밥 나눈 다음, 그 다음날 날씨 봐가면서 불을 지폈다. 점심 먹고나서였다. 

연산은 면 차원에서 쥐불놀이로 대성황을 이루었지만, 동시에 산제도 곳곳에서 열렸다. 논산에서 산제 하면 대부분 연산면에 몰려 있는데, 연산리, 오산리, 범골 산신제가 그 대표주자다. 양지서당이 있는 송정1리 산신제는 250년 보호수의 역사보다 더 길다. 4반 범골은 계룡산 끝자락에서 열리는 산제다. 한편 철도 건너편 1~3, 5반이 자리한 천마산과 천호산은 대둔산 줄기다. 그래서 대둔산신제(천마산신제)와 거리제를 지냈는데, 5반에 전원주택단지가 조성되면서 10여 년 전부터는 소멸된 상태이다.


3db4d949fb2ee.jpg

(송정1리 범골에서 계룡산 산신제)

8afbe7745977c.jpg

(벌곡 어곡리 당산제)


[제사] 천년숨결 부인당제~산신제~용왕제까지


1000년 전통의 제사가 드려지는 곳은 부적면 부인2리다. 올해 부인리 지밭의 부인당제는 불을 생략하였다. 김유경 이장 소유의 뜰에봄체험농장은 야자수와 바나나, 커피나무가 자라는 열대농장이다. 이 너른 공간에서 낮 동안 비 걱정 없이 마을잔치 치르다가 조영부인 사당을 찾은 때는 밤 8시였다. 평소 부인당제 할 때는 사당 옆마당에다 대규모 장작불 지피는데, 이번에는 제에만 집중하였다. 

논산에서 정월대보름 전후하여 마을단위 제사나 동제 드리는 곳은 양촌에 몰려 있는 감이다. 중산1리의 정노인 제사와 중산2리 오첨지 제사, 산직2리 열녀전씨 제사와 유동진 옹의 제사 등이 있어서다. 동제로는 임화2리 고산임화 동제, 양촌2리 원양촌 동제가 있는데, 이 두 동네는 ‘소금단지 화재맥이’로도 유명하다. 소금 묻어 화재 막고 화기 누르는 전통풍습이다. 

상월면대보름행사는 신충리 마을앞 널럴한 들판에서 하고 접근성도 좋아선지 논산의 정월대보름 달집을 대표할 만하다. 상월농민회가 주관하면서 농민의 목소리를 확실하게 내곤 한다. 장승제는 상월면 주곡리의 장승제가 유명하지만, 노성면 화곡리에서도 맥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는 장승깎기 생략하고 장승제만 지냈는데, 화곡리에서 머잖은 구암리에서는 용왕제를 지냈다. 용왕제 드린 이후 월오리로 넘어가는 비탈고개에서 교통사고가 줄어들었다는 게 동네사람들 후일담이다. 

노성에서 정월대보름 행사 하면, 3백여 명이 운집하는 호암리다. 이번 2일 행사에서 달집에 별도의 비가림 장치를 하지 않았는데도 점화하자 대나무 달집은 가열차게 타올랐다. 경기민요 초빙건이나 내장된 점화장치 등은 대외비란다^ 그 다음날 노성은 동네마다 시끄러웠다. 노성두레풍물전승보존회가 아침부터 지신밟기에 나서서다. 점심은 두사리에 있는 ‘모두싹’으로 들어가 먹었는데, 동네잔치 가끔씩 벌이는 이 집은 호방한 친환경업체다.  


25b0ecfa6b2f3.jpg

8a0ecb6976da7.jpg

(노성풍물의 풍악과 지신밟기(호암리에서))


South-face 소리소문 없이 할건 다해


시내와, 전라도 쪽으로 향하는 연무대, 채운, 강경, 성동 일대에서의 민속행사는 소리소문없이 흘러가는 듯싶다. 왕우산 자락의 우곤3리 산제는 정월 초엿새, 이렛날 지낸다. 시내에서도 정월대보름 분위기가 간간 감지된다. 건양대학교는 3일 외국인 유학생들 대상으로 사물놀이를 벌였는데, 세마치, 중중모리 장단에 맞춰 꽹과리 등 전통악기를 연주해 본 것이다. 아침마다 시민공원을 깨우는 삼행체체조팀 70여 명은 보름날 아침 6시 반, 오곡밥 단체식사를 마친 후 평소처럼 한시간 운동을 시작했다. 

24절기를 제때 꼬박 챙기는 강경 인동어린이집에서는 날씨 관계로 부럼깨기, 소원적기 달집태우기 행사를 9일로 미루었다. 강경과 같은 위도로 전라도와 접경인 연무읍 고내6리는 신근리로도 불린다. 올해는 우중이라 손님이 적어서 약소하게 치렀다. 풍악 소리에 우산을 쓴 채 어깨춤 추던 할머니가 이내 우산을 접는다. 풍물패를 향해 세 번 절 올리고는 다시 어깨를 들썩인다. 들썩이는 흥 누르기에는, 비도 역부족이었다. 

663b4a0985833.jpg

(연산면 달집)

cc9124a2ed564.jpg

(어곡리 달집)


어곡리, 그 깊은 골짜기 찾아드는 대처사람들


논산의 남단 아닌 북단은, 대전으로 열려 있다. 우선 연산이 그러하다. 주말이면 대전시민들은 동학사쪽으로도 빠지지만, 연산으로도 몰려온다. “대나무 터지는 빵 소리에 속이 뻥 뚫리는 거 같아요.” 대전에서 왔다는 6학년 아이가 달집 맴돌면서 발하는 탄성이다. 주말이면 연산 덕바위농장의 오토캠핑장이 북적대기 일쑤고, 연산창고는 놀이터 주인이 대전 아이들로 뒤바뀌는 느낌이다. 

이 정도는 아니지만 벌곡면 어곡리도 대전 손님이 많단다. 보통 때는 핸들 꺾어서 들어와볼 일 거의 없는 산골이다. 벌곡면사무소에서 벌곡로 따라 조동리 통과하면 마주하는 곳이 대전 서구 우명동. 이 길에 정월대보름 현수막 몇 장 붙여놓으면 어곡리 골짜기로 사람들이 찾아온다. 어곡리(於谷里)는 골짜기가 길게 늘어져 있다고 해서 느락골로도 불리는데, 초입 5반 마을회관에서 3km쯤 구비쳐 들어가면 도착하는 곳이 1~2반 솔골마을쉼터. 

이곳에서는 수호신인 당산나무 앞에서 제사 지내는 당산제(堂山祭)가 이어져왔다. 15년쯤 전, 솔골마을의 전통 계승과 아울러 이우지간 친목도 더 할 겸, 정월대보름 달집행사를 시작하였다. 이 일에는 어머니회가 주축이 됐고, 올해는 동네잔치를 다채롭게 하고자 지역가수도 불렀다. 전임이장 부인의 소개로 4명 가수의 재능기부를 받았다는데, 우중에도 만면웃음들인 풍물보존회 공연도 동일선상이다. 

2d420267d4a6c.jpg

(어곡리 당산제 축문)

f1bff4d1222bf.jpg

(밤새 불타는 부적면 충곡리 들판의 불길)


충곡리, 왼손으로 가훈 써 나눔하는 서예가


낮의 비 여전한 한밤중, 어곡리에서 돌아나오는 길, 차는 어쩌다 보니 부적면 충곡리다. 꽤 늦은 시간인데도 마을회관 옆 논에서 장작불이 성성하다. 올해는 어느 폐가 허물면서 그 집 섣가래 뜯어다가 달집을 축조했단다. 달집 재료 거개가 대나무인 데 비해 장작불은 불담이 실해 보였다. 달집행사 한다 하면 의용소방대가 대기하고 있다가 물호스로 잔불 끔과 동시에 야외 행사 종료를 선언하는 편인데, 충곡리는 그냥 밤새 놔둔단다. 

마을회관 안에는 동네분들이 도란도란이다. 파제(罷祭), 제사하고 남은 음식 나누는 음복(飮福) 시간이다. 충곡리에는 서예가 한 분이 있다. 오른손 다쳐 못쓰게 되자 왼손으로 쓰기 연습을 거듭하여 다시 서예를 하게 된 최귀석 옹이다. 논산의 정월대보름은 재능기부도 만월이요 풍년이다. 대보름 행사비가 5백만원 호가하는 곳도 있지만 50만원 선에서 그치는 곳도 있다. 어느 곳이든, 동네사람들 봉투가 눈웃음 살살인 돼지의 입과 코를 키워간다. 

한밤중 꽃샘추위 동장군이 콧바람 쎄게 불면서 시샘 부리자 충곡리 밤하늘이 순식간에 별똥별 천지다. 세기의 우주쇼 못잖다. <붉은 말의 해에 솟아오르는 붉은 달 블러드문이, 후루룩 타오르다 마는 검불 아니라 가가호호 구들장 따십게 뎁혀주는 불담 되어 주소서> 여전히 성성한 불 아까워하며 자리를 뜨는 어느 과객이 마음판 소지에다 쓴 축문이다.  


- 이진영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