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새해새벽일기] 노성산 깨우고 햇무지개로 화답한 천마땅 놀뫼

2026-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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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1일 해뜨는 시간이 7시 40분이란다. 동행이 “풍물이 6시 반부터 시작이니 6시는 떠나야 한다” 해서 서둘렀다.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카메라 점검도 제대로 못했고, 옷도 대충 입은 채 노성산으로 떠났다. 

차가 명재고택쪽으로 좀 진입했나 싶었는데 벌써 방범대원들 손에는 경광봉이 들려 있다. 노성산 출발지인 애향공원까지 700m 어둑한 길을 걸어갔다. 목적지가 분명하니 묵묵 걸어갔는데, 가자마자 찾은 곳은 큰 모닥불(庭火). 이중삼중 둥그런 인간사슬띠 파고들기 만만찮았지만, 빈틈은 생겨났다. 언 몸 한참 녹인 후 둘러보니 좌측으로는 텐트에서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오른쪽 모정 부근에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2026 병오년 노성산 해맞이 행사> 행사장쪽에서 외치는 소리 하나 “이제 두드려 봐야지!” 노성면 두레풍장 전승보존회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징소리~ 북소리~ 잠들어 있는 해를 깨우고 일으켜 세우려는 태고적 자명종 소리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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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병오년 노성산 해맞이 행사


그 소리는 7시부터 확성기 소리로 바뀌었다. 돼지머리는 없었지만 시루떡과 명태로 차려진 상에 새해기원제 하실 분들 나오시라는 방송에 쭈뼛대는 소리도 들린다. “난 봉투 없어서 못 가!” 미루어 짐작하건대, 마이크를 잡은 사람들, 현수막 하단에 적힌 단체들은 이미 재정지원을 두둑 한 거 같다. 

이 행사 주관한 노성면번영회 박노균 총무가 마이크를 잡고 개회선언을 하였다. 노성면 정은숙 면장이 나와서 기원문을 낭독한 다음, 축시가 낭송되었다. 노성면 주민자치회에서 시낭송 교육을 해온 이규화 낭송가가 권선옥 시 “새해의 기도”를 낭송한다. 


새해에는 어둠을 젖히고

힘차게 솟아나는 태양처럼

세상을 따뜻하게 세상을 밝게 하는

좋은 이웃으로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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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한의 날씨에도 한복 차림으로 나서 우렁차게 낭송하니 모두의 염원이 한데 모여 노성산 정상으로, 천상으로 전달하는 듯했다. 마이크 소리는 그 정도였다. 영하 15도 혹한의 날씨에 장비도 얼어붙어선지, 이후 덕담 시간에는 단절음만 내보냈다. 새해덕담은 조관행 어르신분회장에 이어 도의원과 시의원, 면장, 정재근 한유진 원장, 허용실 노성농협조합장, 윤여두 ㈜루트회장 순으로 이어졌다. 이수행 번영회장이 만세삼창으로 대미를 장식하자 언능 끝나기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두레풍물소리가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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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정의 불씨, 커다란 불자리로


식이 끝나자 발길은 떡국 솥단지로 향하였다. 노상 탁자 위에는 김 모락 떡국에 김치, 시루떡, 돼지고기에 귤까지 깔려있다. “고기는 얼어서 잘 안 떨어지네그려!” 그래서 더 빛나는 떡국이다. 장사진 속에는 동·서양 외국인들도 간간 눈에 띈다. 학교 다니는 학생들은 물론 엄마아빠 손잡은 고사리손들도 있었다. “깨우지 않았는데도 일어나서 왔어요.” 모자 안 쓰거나 귀덮개 안 한 사람이 거의 없다. 함께 따라나온 개들도 머리까지 중무장인데, 나만 범 무서운 하룻강아지처럼 투구가 없다. 민낯이 좋은 점도 있다. 알아봐주는 사람들이 있어서다. 어둑어둑 실루엣에서 모자에 마스크까지 중세기사들이다 보니 아는 사람도 그냥 지나치기 일쑤.

폰 사진 찍느라 왔다갔다 하면서 본능적으로 들르게 되는 곳이 불자리이다. 불덕에서 몸이 녹으면 또다시 정찰 떠나곤 하는데, 해는 예정된 시간이 됐어도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산 위에 검은구름 한켜 덮여 있어서다. 태양이 떠오르면 세상이 밝아지고 온기도 함께다. 하지만 시간이 걸리니 당장 발등의 불은, 나뭇불이다. 온 몸 뎁혀주고 어둠을 일정거리 밀어내는 데는 장작불이 최고다. 이에 생각의 불길이 “이웃 사촌이 먼 친척보다 낫다”로 번진다. 원친불여근린(遠親不如近隣) 이 한자와 대척점인 한자도 있다. “먼 나라와 사귀고 가까운 나라를 친다”는 원교근공(遠交近攻)이다. 가까이 있다 보니, 더 지지고 볶고 용호상박이다. 


새해에는 남에게

모질고 날카로운 말로

상처 내어 아프게 하지 말고

온화하고 아름답게 말하며

나와 말 섞는 사람마다

기쁨으로 가득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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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선 화합이 속마음 울림 되게끔


올해 해맞이도 논산 15개 읍면동이 대부분 지역별로 하였다. 탑정호에서만큼은 시내와 부적 등 탑정호 인근 주민들이 연합하여 모였다. 지역별로 20개 단위봉사회가 있는 대한적십자사봉사회 논산시협의회는 탑정리 분수대앞 행사장에서 1800명에게 떡국봉사를 하였다. 노성에서 나간 떡국 그릇수도 1250개로 집계되었다. 밥을 먹었으면 밥값을, 떡국은 떡국값을 해야 하는데 그 가격이 현수막에 암시되어 있다. “화합을 위한....”  화합(和合), 입 달린 사람마다 구두선처럼 왁자지껄이지만, 막상 그 실천은 산넘어 산인 모양이다. 

떡국 행렬은 줄어들 기미가 없다. “가스불이 시원찮아서”라는 말도 나돌았지만, 실은 산에 올라갔다 내려오는 사람들이 속속 도착해서다. 비산비야(非山非野)라 했던가? 영험한 명산 계룡산 자체보다 거기서 다소 내려온, 약간 거리가 있는 곳들이 오히려 명당으로 꼽히는 모양이다. 비산비야의 하나로 손꼽히는 데가 명재고택이 자리한 동네고, 노성산이고 호암산이다. 이 혹한 속에서도 사람들은 산을 향한다. “다섯시쯤에 올라간 거 같아요. 올라가는 데 한 시간 정도 걸렸나?” 나이 지긋한 분의 안내말이다. 재작년 산에 오르다 엉덩방아를 쪄서 고생한 대학생이 있었다. 다시 산에 오른다며 행사장을 떠난다. 2025 토마토 명인으로 선정된 올굿농장 가족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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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는 이들에게 빚이라도 진 듯, 꼭두새벽부터 나와서 섬기는 손길들이 분주하다. 몸으로 봉사하는 민간단체로 파란색 새마을 부녀회와 지도자, 노랑 적십자봉사회, 100세건강위원회, 주민자치회, 이장단, 자율방범대, 의용소방대, 두레풍물전승보존회 등이 눈에 띈다. 기관으로는 노성면사무소와 한유진, 그리고 노성농협. 노성산 해맞이 행사는 새천년 시작인 2000년 노성농협에서 시작했다가 2009년부터는 번영회에서 바통을 받았다. 새벽을 깨운 이들의 행보에 기자는 염치 없게도 말띠 주마가편을 하였다. “회장님, 오늘 너무너무 애쓰셨고 다 좋은데 2% 아쉬움이 있네요. 불은 지금 나무팔레트도 좋지만, 내년부터는 노성산 나무 장작불이면 좋겠어요!” 

떡국 거저 먹은 입장에서 과욕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오버랩되는 시가 있다. <그 위에 더 무엇을 바라시겠습니까?>  “첫 구절은 신의 선물이다”고 말한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와 달리 “신의 선물은 마지막 구절이다”고 갈파하는 시인, 나태주의 시 “새해 인사” 끝 구절.


이제, 

또 다시 삼백예순 다섯 개의

새로운 해님과 달님을 

공짜로 받을 차례입니다.


그 위에 

얼마나 더 많은 좋은 것들을 덤으로 

받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그렇게 잘 살면 되는 일입니다 

그 위에 더 무엇을 바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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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새해가, 산등성 스폰지구름 즈려밟고서 가뿐 올라섰다. “와아~” 동시 함성은 터지지 않았다. 비산비야 구릉 700 되짚어 내려와, 엄동설한에 기다려준 냉동차에 시동 걸어 스파크를 튀겼다. 23번 국도를 가열차게 질주한 애마가 시내 진입했을 때 눈이 번쩍 뜨였다. 좌로는 아침해, 우로는 햇무지개(日虹)가 직립하고 있었기 때문. 

아침햇살에 밀려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상서로운 기운이 상하로 뻗쳐 있는 게 아닌가! 세로로 천지가 이어진 도읍, 가로는 홍예교 등 내주어 너와 나를 건너게 해주는 땅 놀뫼의 서광이다. 논:산 비중이 평균율 3:7 뒤집은 7:3인 논산의 시작이다. 현수막 속 “새로운 시작”이 깨어난다. 


- 이진영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