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의 황혼나들이] 인생운동회~가을소풍 "앞마당에서 한바탕 뛰고, 소풍은 탑정호 공원으로"

2025-10-28




소싯적 학교 운동장에서 흥부놀부 박 터뜨리던 운동회, 그 운동회를 인생 말년에 다시 한번 해볼 수 있을까? 주로 실내생활만 하는 요양원 식구들이 간만에 가족들 만나 바깥 마당에 나와 스스로 걸어간다. 이곳저곳 둘러보며, 마이크 소리에 하는 데까지 따라 해본다. 노인학교는 운동회만 있는 게 아니다. 가을 소풍까지, 있을 것은 다 있다. 

국민빵집 성심당에서 개최하는 운동회는 젊은 직장인들이 하나 되어 달리는 ‘웃는 운동회’다. 논산에서 져도 유쾌상쾌한, 진 거 같은 데도 이겨있는 이상한 운동회가 열렸다. 더큰사랑요양원의 2025 ‘인생 운동회와 가을 소풍’을 따라가 보자.





17일 더큰사랑요양원, 명랑운동회 열어

21~23일 탑정호 딸기테마공원으로 소풍 다녀와


지난 17일 건양대학교 인근에 있는 더큰사랑요양원 앞마당이 왁자지껄했다. 요양원 가을운동회가 열려서다. 명랑운동회에는 200여 명이 동참했다. “원의 어르신과 가족, 그리고 직원이 함께하는 이번 행사 슬로건은 <요양원이지만 울엄마, 울아부지의 또하나의 집>입니다. 우리 어르신들의 활력을 높이고 세대간 소통을 넓히기 위해 준비했습니다.” “이번 두 행사는 어르신들이 ‘돌봄의 대상’을 넘어 ‘존중받는 주인공’이 되게끔 하기 위해서 시작하였고요~” 유용희 원장의 야외행사 취지 설명이다. 



생일잔치로 테이프 끊은 명랑운동회 


명랑운동회는 생신잔치로 시작됐다. 직원과 가족이 손을 맞잡고 축하 노래를 부르자,  “이렇게 많은 사람과 생일을 함께하는 건 처음이에요. 진짜 행복해요.” 이렇게 말하는 87세 최상희 어르신 눈가는 촉촉 젖어 있다. 

생일 축하차 등장한 풍물패는 언제나 분위기 올리는 고수들이다. 북과 장단이 울려 퍼지자 어르신들은 너나할 거 없이 손뼉을 쳤다. 가족과 직원들도 어깨춤 추며 웃음꽃 번지니 운동장은 어느새 마을잔치판이다. 



생일잔치 마친 다음 명랑운동회가 본격 시작되었다.  풍선 많이 담기, 종이컵 운반 릴레이, 과자 따먹기, 짐볼 볼링대회, 흥부와 놀부 박 터트리기, 어르신 패션왕 선발대회 순으로 진행되었다.  

“한참 때는 운동회가 신났어요. 나이 들면 잊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다시 운동장에 나와 박수치고 응원하게 되니 너무 좋아요” 어느 80대 어르신의 말에 대한 화답 “노년의 삶에도 축제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자리 같아요.” 부전자전이다. 

인기짱인 프로그램은 가족액자 게임이었다. 어르신의 가족이나 직원이 액자틀 안으로 얼굴을 내밀고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어르신과 함께 웃는 모습을 연출하는 장면이다. 액자 속 사진들이 살아 움직인다.  

 또하나의 하이라이트는 어르신과 가족, 직원이 한 팀 되어 과자 따먹고 함께 뛰는 게임이다. 팔짱 끼고서 바통 잡고 달리는 모자, 휠체어 밀며 함께 결승선 통과한 아들, 손을 맞잡고 허허 웃기만 하는 어르신들.... 세대와 세대를 잇는 감동의 현장이 가족영화의 한 신, 한 신으로 촬영된다.  “학교 운동회에서는 엄마가 저를 응원해 주셨는데, 이제는 요양원에서 제가 엄마 손 잡고 응원을 하게 됐네요.” 무심한 세월을 탄하는 모전자전 대사다. 

드디어 가을운동회 시상식 시간! 그런데 어르신들 목에 걸리는 것은 금메달과 은메달뿐이다. 이제는 누가 이기고 지는 게 별 의미가 없다. 서로 손 잡고 웃으며 함께했던 그 시간, 그 추억이 더 값진 메달이기 때문이다. 



가을 원족과 50년 후의 성심당운동회


콧바람을 쐰 명랑운동회의 여운은, 가을 소풍으로 이어졌다. 장소는 논산 탑정호 딸기테마공원. 날짜는 10월 21일부터 23일까지 3일간 나누어서 갔다. 더큰사랑요양원 부설인 매치매치 주간보호센터 어르신과 직원, 자원봉사자 등 150여 명이 한날 한시에 움직이자면 부작용이 우려돼서다. 

간만에 바깥나들이 나선 어르신들은 따사로운 가을 햇빛 아래서 손에 손 잡고 산책을 즐겼다. 레크리에이션할 때와 보물찾기할 때 아이들처럼 깔깔 대며 사진도 찍었다. 소풍 때 가장 즐거운 시간은 점심 시간! 학교때처럼 도시락 까는 대신 치킨 파티가 펼쳐졌고, 서늘해지는 가을공기는 따뜻한 대추차가 밀쳐내었다. “원을 잠시 떠나 원족 오니까 다들 아이때로 돌아가는 거 같아요. 오늘 소풍은 단순 외출이라기보다,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가는 시간’이 아닌 ‘스스로 걸어가는 시간’임을 자각하게 되어서, 그런 자아 존중의 의미가 더 값진 거 같아요.” 이미형 회장의 소회다. 



학교에서도 운동회 소식이 작게 들려오는 즈음에, 대전의 대표 빵집인 성심당은 11월 3일 회사 전직원 대상으로 대규모 체육대회를 연다고 공지했다. 그 체육대회가 젊은 직장인들이 하나 되어 달리고 ‘웃는 운동회’라면, 요양원 어르신들이 손 맞잡고 웃으며 달리는 행사는 ‘인생 운동회’요 ‘황혼의 나들이’다. 

성심당 젊은 직원들이 나이 들어 50년 후 운동회를 다시 연다면, 경쟁 아닌 2인3각 동반의 행진이 되지 않을까? 서로 마음을 나누는 잔치, 웃음꽃 일색인 인생운동회!^

유용희 원장은 “젊은이에게 운동회는 팀워크 다지는 행사지만, 노년 운동회는 인생의 다음 장을 함께 살아가는 따뜻한 연대의 장이 될 거”라면서 “앞으로도 어르신들이 존중받으며 활기찬 노년을 살아가실 수 있도록 안팎으로 다양한 채널을 구동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이진영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