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초대석] 회화적 유희로 인간을 품은, 화가 이혜경

2025-07-11




논산시 은진면 성덕리, 탑정호로 이어지는 도로가에는 ‘프리비젼스’라는 커피숍이 위치해 있다. 처음 이곳을 찾는 이는 그저 감각적인 인테리어의 커피숍 정도로 여기기 쉽다. 하지만 이 공간의 진정한 깊이를 알아채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스튜디오, 라운지, 게스트하우스 등 다양한 문화 공간을 갖추고 고객의 니즈에 따라 최적의 장소를 제공하는 음향전문 컨설팅기업 ㈜프리비젼스(대표 김도헌)가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이곳이 단순한 상업공간을 넘어서는 이유는 '프리비젼스' 뿐만아니라 국내외 미술계에서 활약해 온 중견 화가 이혜경의 아뜰리에(atelier)가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아뜰리에는 프리비젼스 바로 옆에 자리해 있다. 

250여 회의 국제전 및 단체전, 17회의 개인전과 초대전을 치른 이혜경 화가는, 한국을 넘어 뉴욕과 파리 등지에서 주목받는 예술가다. 그녀는 수십 년간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깊은 연민과 애정을 회화로 표현해 왔다. 인터뷰를 위해 그녀의 아뜰리에를 들어서는 순간 강한 에너지를 품은 작품들이 기자를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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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곧 본능"…일기처럼 그려내는 삶의 감정


이혜경 화가는 “예술은 내게 본능”이라고 말한다. 삶을 통과하며 마주한 감정의 파편들을, 캔버스 위에 고스란히 쏟아낸다. 그녀에게 그림은 단순한 작업이 아닌, 일기처럼 하루하루 기록되어야 하는 생의 흔적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외로움, 질투, 상실, 슬픔 같은 감정을 그녀는 부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끌어안는다. 그리고 그것을 화폭 위에 다양한 색채와 형상으로 승화시킨다.

그녀의 작품을 마주한 이들은 흔히 '위로받는 기분이 든다'고 말한다. 슬픔조차도 부드럽게 감싸 안는 색채, 어긋난 감정조차 조화롭게 품는 구도가 그렇다. 이혜경 화가의 그림은 감정을 추상화하기보다는, 삶의 순간들을 형상으로 풀어내는 방식이다. 그것이 바로 그녀만의 ‘회화적 유희’다.

특히 지난 개인전에서는 버려진 골판지를 캔버스로 활용한 작품이 관객들의 시선을 끌었다. 박스롤을 해체한 그 질감을 그대로 살려 네 명의 여인을 그려냈는데, 이는 고정적인 예술 개념을 깨뜨리는 시도였다. 이혜경 화가에게 예술은 늘 새로운 실험이며, 고정된 관념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한 그녀의 작업은 국내보다 오히려 뉴욕, 파리 등지의 해외 관객들에게 더 신선하고 깊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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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뜰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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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 <기쁨> 캔버스에 아크릴 41×25㎝ 1998, <갈등> 캔버스에 아크릴 41×32㎝ 1996, <환희> 캔버스에 유채 53×45.5㎝ 2012, <희망Ⅰ> 캔버스에 유채 90×90㎝ 2009,  <슬픔> 캔버스에 유채 72.7×60.6㎝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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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 감성을 키운 가문과 성장 환경


서울에서 태어난 이혜경 화가는 어린 시절부터 예술과 가까이 있었다. 그녀는 “연필만 있으면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리며 혼자 상상의 세계에서 놀았다”고 회상한다. 이러한 예술적 기질은 가족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물려받은 것이기도 하다.

조부 이윤찬 옹은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귀국 후 홍익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로 재직한 인물이다. 아버지 역시 경성약전(현 서울대 약대)을 졸업해 신촌 세브란스 병원을 거쳐 종로에서 약국을 운영했지만, 실상은 음악과 미술을 사랑한 예술인이었다. 

어머니는 그녀가 결혼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돌아가시기 전 “통일이 되면 꼭 찾아보라”며 북한에 있는 동생들의 이름과 주소가 적힌 메모를 건넸다. 아버지는 그녀가 36세 되던 해인 1982년, 홀로 미국으로 건너가 바다를 보며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며 여생을 보냈다.

1950~1960년대의 경직된 사회 속에서도 이혜경 화가는 자유롭고 개방적인 사고를 허락한 가족 덕분에 독특한 예술 세계를 펼칠 수 있었다. 

그런 그녀는 논산 김씨 집안의 11남매의 장남과 중매로 결혼을 하게 되었다. 남편은 1967년 금성사(현 LG전자)에 입사해 최고 CEO까지 근무한 '성실맨' 그 자체였다. 그녀는 지금, 비록 남편은 먼저 떠났어도 논산 은진 성덕리에서 아뜰리에와 프리비젼스를 운영하며 그들의 본향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이혜경 화가는 인터뷰 내내 자신을 묵묵히 지지해준 가족에게 깊은 감사를 전했다.

“소리 없이 제 곁을 지켜준 남편에게 정말 고맙고, 믿음 안에서 건강하게 잘 자라준 딸 현진, 아들 도헌에게도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무엇보다도 예술의 혼을 물려주신 아버지와 할아버지, 그리고 저를 따뜻하게 품어주셨던 어머님께도 이 자리를 빌어 진심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녀의 말 속에는 예술가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가족과 삶을 소중히 여기는 진심이 담겨 있다. 그녀에게 예술은 '개인의 기록이자, 가족의 기억이며, 공동체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본향인 논산에서 실천하는 "예술의 사회적 가치"


현재 프리비젼스를 운영하고 있는 그녀의 아들 김도헌 대표는 미국 조지 워싱턴 대학교와 SAE Institute에서 공학과 음향을 전공했다. 이후 음향 관련 다양한 업무와 대림대 교수로 재직하다가 서울에서 시작한 프리비젼스를 고향 논산으로 2024년에 이전했다. 

김도헌 대표는 매달 클래식 연주회를 기획해 지역 주민들에게 문화 향유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며, 어머니의 작품 활동을 가까이에서 지원하고 있다. 단순한 기업 운영을 넘어서 지역 사회와 함께 호흡하는 문화를 실천하는 중이다.

이혜경 화가 역시 지역사회 및 지역 예술인들과 보다 더 적극적으로 소통하고자 논산에서 개인전 개최 등 여러가지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는 심경을 토로했다. 

"과거에는 사람 위주로 도시적인 형태의 그림을 주로 그렸다면, 이제부터는 자연 속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싶습니다. 현재 논산에서의 생활은 단순한 은거가 아니라, 예술의 본질을 되새기며 지역 문화예술인들과 교류하는 시간입니다. 이는 제 자신의 예술이 개인을 넘어 지역 예술인들과 보다 더 적극적으로 소통해 지역공동체에 보탬이 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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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Ⅱ> Mixed Media on Canvas 200×20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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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념> Oil on Canvas 162.2×130.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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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의 시간> Mixed Media on Canvas 130.3×227.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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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I Was Here> 캔버스에 유채 110×70㎝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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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I Was Here> 캔버스에 유채 130.3×162.2㎝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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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아름다운 세상> 캔버스에 유채 90.9×72.7㎝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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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념> 캔버스에 유채 130.3×97㎝ 2014


일상의 아름다움을 읽어내는 "시선"


이혜경 화가는 예술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그녀의 화폭은 누군가의 슬픔을, 또 다른 이의 기쁨을 담고 있다. 그녀는 ‘다름’을 인정할 때 우리는 진정한 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각기 다른 감정과 존재들이 어우러지는 삶, 그것이 곧 그녀가 그리는 인간의 초상이다.

과거(1998.5.) 그녀는 작가노트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게는 계획된 의도나 작품의 조형성 내지는 연습이 없다. 그저 그날의 있는 감정 그대로 욕심없이 다가갈 때 나의 모든 것이 보여진다. 오늘은 오늘 나름대로의 감정으로... 내일은 내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 그래서... 매일 다른 내모습을 보기위해서도 나는 쉬지 않고 그려댄다. 보이기 위함보다는 보여지기를 더 바라면서... 혹 한 두 사람일지라도 내 감정과 일치하면 난 그걸로 크게 행복해하리라..."  


김인환 미술평론가는 이혜경 화가의 작품세계에 대해 "그녀는 구상적인 대상, 즉 주로 인체나 풍경을 모티브로 한 표현성 짙은 화풍을 드러낸다. 거친 붓질의 조야함과 개방된 색면의 자유스러움,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는 감성의 내연과 분출로서 설명될 수 있는 화면이다. 사물의 대상 세계를 추구하고 있으면서도 지극히 비현실적인 심상풍경이 담겨져 있다. 오로지 사물의 형상을 빌렸을 뿐인 감성이 내면을 한꺼번에 쏟아 부운듯한 화면으로 용솟음치는 열정이 그대로 표상화로 이어진다"고 논평했다.

이혜경 화가의 40여 년의 화력을 일관하는 '매체'이자 '주제'는 "인물"이다. 그의 인물화 앞에서 관람자는 '낯설지 않은 편안함'으로 삶의 새로운 활기와 즐거움을 갖는다. 항상 스스로 경험한 사실을 회화에 담담히 담아온 그녀는 결국 삶을 긍정하는 단순한 표정의 인격을 창출했다. 이로써 그녀는 미술이 회복과 치유의 매체가 될 수 있음을 매번 확인시키며 증명해 왔다.

논산이라는 조용한 공간에서 삶과 예술을 일치시키며 살아가는 이혜경 화가. 그녀의 삶과 작업은 우리에게 예술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내면의 목소리를 진솔하게 담아내는 용기라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 전영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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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혜 경 

  •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수학
  • The Art Students League of New York 수학


개인전

  • 2024 개인전 (인사동, 마루아트센터)
  • 2022 초대전 (삼청동, 두피갤러리)
  • 2020 초대전 (대구, 수피아미술관)
  • 2018 초대전 (강남, 아띠갤러리)
  • 2017 K&P갤러리 초대전 (N.Y. 첼시)
  • 2016 초대전 (강남, 갤러리썬)
  • 2014 초대전 (미술세계 초대전)
  • 2010 개인전 (인사아트센터)
  • 2008 개인전 (인사아트센터)
  • 2000 초대전 (갤러리썬)
  • 1999 초대전 (강남, 가산화랑)
  • 1998 NY, 초대전 (NY, SOHO)
  • 1998 개인전 (인사갤러리)
  • 1995 개인전 (인사갤러리)
  • 1994 개인전 (강남, 미건갤러리)
  • 1992 개인전 (서울갤러리, 프레스센터)


해외단체전 및 부스전

  • 2022 인천아트페어
  • 2020 서울아트페어 (코엑스)
  • 2018 ART BUSAN 부산국제아트페어(BEXCO)
  • 2017 SOFA 서울오픈아트페어 (예술의전당), 독일 베를린 그룹전
  • 2016 상하이아트페어, 홍콩아트페어
  • 2014 이태리 밀라노아트페어 부스전, 모스크바 그룹전
  • 2012 대만국제아트페어 부스전, 타이페이아트페어 부스전
  • 2008~’09 스위스 제네바아트페어 부스전
  • 2000 뉴욕 아트엑스포 부스전
  • 그 외 200여 회 그룹전


저서

  • 누드크로키 화집 (1994)
  • 난 꿈을 이루었다. 맨해튼에서 (2018) 


현재

  • 한국미술협회 회원
  • 세계미술협회 회원
  • 전업작가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