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의 자연발생공동체 ‘신양리 박사촌’

놀뫼신문
2022-04-26


논산의 자연발생공동체 ‘신양리 박사촌’ 

- 신양리주말농장주민자치회 창립총회를 다녀와서 - 

지난 23일, 연산면 신양리 황산벌 둥지에서 주민총회가 열렸다. 일반적인 마을총회가 아니라, 신양2리 산비탈 일대의 주말농장 주민들로 구성된 주민자치회 창립 총회였다. 

농부차림의 70여 명이 운집했다. 웬만한 시골 마을 회의보다 큰 규모의 모임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는 88올림픽때 신양리에 11만여 평의 토지를 매입 “주말체제 영농단지”로 조성하였다. 100평 정도로 잘라진 600여 필지가 30여 년 전에는 잠자고 있었다. 한 세대가 흐르는 동안 사람들이 하나씩 하나씩 들어오더니 최근에는 200여 필지에 농막이 설치되었다. 정년퇴직 나이가 되면서 신양리로 들어오는 사람이 많아졌고, 이제는 공식적인 자치 조직까지 필요해진 시점이다. 



친목모임 ‘좋은이웃’이 주말농장자치회로 


10년 전 조직된 “연산좋은이웃” 40여 명이 모태가 되어 새롭게 결성된 주민자치회의 총회는, 일반모임처럼 운영규칙, 사업계획, 발전방안 등이 발표되고 논의되었다. 여느 동네와 약간 다른 점이 있다면 PPT를 빔으로 쏘는 풍경들이다. 말미에 고지된 공동체 준수사항도 화면 위에 그대로 떴다. 신양리에서 새 생활을 시작하는 주민들이 많아졌기에 일상생활 속의 약속들이 하나씩 명문화되어가는 과정이다. 대한민국 최다 지명 신기(新基; 새동네) 중 하나가 될 신양리주말농장 농가들의 향약이다.    

신양리주말농장은 대한민국 인구 집산의 새로운 선례다. 주중은 도시에, 주말은 농장인 전형적인 5도2촌형 세컨드 하우스 패턴이기 때문이다. 주거 인프라는 어쩌다 하루를 다녀가든 매일 생활하든, 있을 것은 다 있어야 한다. 소수가 들어왔을 때는 크게 서로 신경 쓰지 않았지만 이제는 웬만한 마을 못지않은 큰 공동체로 성장했으니 자연발생적인 주민자치회다.  

대부분 첫 대면이지만 그간 미루어두었던 숙제들이 공론화되었다. 마을공동체를 위해 가로등, CCTV, 인터넷망 등 생활 기본시설은 물론 쓰레기처리, 배수관, 퇴비/비료, 농자재 구매에 이르기까지 공동으로 신경 써야 할 사안들이 계속하여 생겨나고 있다. 산적한 문제들을 앞장서서 해결해나갈 집행부가 구성됐고, 마을로 말하면 반장인 ‘구역장’들도 선임되었다. 



‘주말체제 영농단지’ 조성을 목표함


김우곤 초대회장을 비롯한 10명의 임원이 헤쳐나가야 할 과제가 10여 가지 제시되었다. 이 동네에서 제일 중요한 목표는  ‘체재형 주말농장’ 조성이다. 천호산자락에 펼쳐진 신양리 주말농장은 태생부터 독특했다. 신양리 단지는 1987년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조합원이 구성되어 초기에는 “전원주택 단지용”으로 설립되었지만 도중 불가피하게 “주말체제 영농단지”로 조성된 것이다.

초창기인 1990년 초 논산시에 택지개발을 신청했으나 법률적 제한으로 논산시는 불가능을 통보했다. 경지정리 조성공사 허가는 받아서 1996년 개인지분 분할 635필지의 주말 농장으로 준공되었다. 도로문제는 농장 도로 11,600평을 건설교통부에 기부채납하여 해결하였다. 일련의 과정들을 요약 정리해보면, 신양리 산 일대는 내용은 전원주택이요, 법으로는 주말농장이다.  

일반적으로 볼 때 포장도로가 깔리고 전기가 들어오는 주말농장은 없기에, 신양리주말농장은 사례 연구가 필요할 정도로 특이한 케이스다. 대부분 농사 자체보다 적정한 노동과 여가를 즐기는 휴식공간으로서의 존재 의의가 높은 지역이다. 법은 한 필지당 농막이 20㎡를 넘지 못하도록 규정해 놓았다. 그게 너무 비좁으므로 현재는 부대시설 포함 40㎡까지 허용되는 분위기다. 이렇게 집도 되고 농장도 되는 이중 상황이다 보니 현지 주민도, 논산시도 딜레마다. 이곳 지목(地目)을 어떻게 볼 것이냐? 주거시설 허용치는 어디까지 할 것인가? 주민이 이렇게 늘어난 이상 어떤 식으로든 재정립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법은 명확하다. 현재까지 적용해온 법대로 한다면 긴 얘기가 필요 없다. 문제는 법 못지않은 현실이다. 인구소멸도시인 논산시가 시골로 들어와 살겠다는 이들을 제한하고 배척한다면, 인구 유입 정책과 정면 충돌한다. 농업기술센터 귀농팀은 논산으로의 귀농 유도를 위해 은퇴그룹들을 수소문하여 그들을 설득하느라 동분서주한다. 그런데 현실은, 이렇게 제발로 찾아와 살겠다는 신양리 주민들을 마냥 반기는 분위기는 아닌 성싶다.

물론 이유야 있다. 법 규정도 그러하지만, 초입 산 아래 사는 현지 주민들 분위기도 다소 반영된 감이다. 조용하던 시골마을길에 고급차가 들락거리고, 그네들의 도회지 생활 방식이 일견 잘난 척으로도  비치니 오해 아닌 오해의 시선들도 교차하리라. 주말농장 입주민들도 ‘논산에 와서 하노라고 한다’며 볼멘 소리다. 장은 연산 하나로마트 들러서 보고, 외지 손님 대접할 때는 연산맛집을 즐겨 찾는 등 지역경제 활성화도 늘 염두에 두니 말이다. 



민·관과 현·외지인, 상생의 선례 갈림길


어쨌거나 두 평행선이 이제는 서서히 접점을 찾아야 할 때이다. 신양리와 직·간접 상관 있는 이들 모두가 한발자욱씩 양보하여 상생(相生)의 선례를 남기는 일이다. 20여년 전 초창기부터 들어와 농장을 일구어온 카페 ‘꽃이랑나무랑’이 하나의 모범사례다. 여기로 들어와 살기로 작정하고 불철주야 노력한 결과, 주말농장터인 이곳에 주민등록도 옮겼고 카페영업허가도 받아냈다. 

대전이 생활권인 이곳 주민들 대다수가 그렇게까지는 못하더라도, 신양리 5도2촌 주민들을 논산시는 대승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 귀농인 유입 자체도 그러하지만, 입주민 상당수가 대한민국 과학 분야의 브레인들로 대부분 박사급들이다. 지방정부들은 자체 예산을 대거 투입하여 예술촌, 도예마을, 독일인 마을이니 하면서 특화마을, 특화거리를 조성하느라 여념이 없다. 근일 타계한 이외수 소설가 거처도 그러하지만, 논산시의 경우 박범신 소설가의 유치는 논산 이미지 업(up)은 물론 경제성으로만 보더라도 ‘최소 투자 최대효과를 거양한 적극행정’의 모델이다. 

연산면 신양리 산자락은 어떠한가? 예산 투입 하나 없이도, 그 자체로 이미 ‘박사마을’이다. 호박이 덩굴채 굴러들어왔으나 논산시 관계기관들은 무덤덤 별 감응이 없어 보인다. KTX 코레일매거진 최근호에 ‘연산창고’가 대대적으로 소개되었다. 연산창고의 주 타게트는 대전권과 서울경인권을 겨냥한 듯 보인다. 이렇게 논산은 외지인들에게 달콤달달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등하불명이라 했던가? 연산면 천호산 깃대봉 아래 신양리 주말농장은 관심권역 밖의 오지 분위기다. 황산벌둥지도 그래 보인다. 허나 기자의 눈에 신양리는, 논산땅에 떨어진 거대 운석이자 논산 미래의 명운을 가를 시금석(試金石)으로 보인다. [관련기사 = 놀뫼신문 2020-05-13일자 [집중기획] 논산형 주말농장 모델 <‘텃밭과 정원이 공존하는 미래형 휴식 공간’ 신양리 주말농장> https://nmn.ff.or.kr/18/?idx=3829519&bmode=view



- 이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