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지역미디어지원사업] 유보통합 기반 생태유아교육 ‘생태놀이를 말하다’ 6 절기와 세시풍속 속 생태교육
산에 오르고, 꽃전을 부치고, 차를 따르는 날
중양절 세시풍속으로 배우는 돌봄과 생태교육…AI 시대 ‘비인지 능력’을 키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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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력 9월 9일은 양(陽)의 수 가운데 가장 큰 수인 9가 두 번 겹치는 중양절(重陽節)이다. 옛사람들은 이날 높은 곳에 올라 가을 하늘을 바라보는 등고(登高)를 즐기고, 국화전과 국화차를 나누며 이웃과 정을 나눴다. 국공립 인동어린이집은 이 오래된 세시풍속을 아이들의 생활과 놀이로 되살리고 있다. 한 살·두 살 아이들은 채운산을 오르고, 네 살 아이들은 꽃전을 부치며, 세 살 아이들은 동생에게 차를 따른다. 다섯 살 아이들은 붓을 들어 ‘중양절’ 현수막과 서예 작품을 완성한다. 천년 전의 풍속은 이렇게 다섯 살 아이의 하루가 된다. 자연과 전통, 돌봄과 배움이 한데 어우러지는 인동어린이집의 중양절은 유보통합 시대 생태유아교육이 지향해야 할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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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에서는 형이 동생의 손을 잡는다
중양절 아침, 한 살과 두 살 아이들은 인동버스를 타고 채운산으로 향한다. 산 중턱에 내려선 두 살 형들은 한 살 동생의 손을 꼭 잡고 걷는다. 길가에 떨어진 솔방울과 도토리, 곱게 물든 잎을 줍고, 자연물을 활용해 얼굴을 꾸며 본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은 버스가 아닌 아이들의 발걸음으로 이어진다. 힘들어도 제 발로 걸어 내려오고, 빠른 아이는 느린 동생을 기다린다. 높은 곳에 올라 가을을 맞이하던 옛 등고 풍속이 아이들의 걸음 속에서 되살아나는 순간이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단순히 산을 오르는 데 그치지 않는다. 몸을 움직이며 자연을 만나고, 동생의 속도에 맞춰 관계를 배우며, 끝까지 걸어 내려오는 과정에서 성취감과 끈기를 익힌다.





네 살의 꽃전, 세 살의 찻상으로 건너가다
같은 시간 네 살 아이들의 부엌에서는 전판이 달궈진다. 아이들은 찹쌀반죽을 동그랗게 펴고 그 위에 꽃을 얹어 화전을 부친다. 뜨거운 전판 앞에서는 차례를 기다리고, 뒤집개를 조심스럽게 쥐어 본다.
하지만 아이들이 만든 꽃전은 자기 반에서만 먹지 않는다. 네 살 아이들은 정성껏 부친 꽃전을 접시에 담아 세 살 동생들의 찻상으로 가져간다. 내가 만든 음식이 다른 친구에게 기쁨이 되는 경험, 그 자체가 나눔의 교육이 된다.
세 살 아이들은 찻상 앞에 앉아 차를 우리는 법과 잔을 건네는 법을 배운다. 네 살 형들이 가져온 꽃전이 찻상에 오르면, 아이들은 꽃차와 함께 전을 나눠 먹는다. 이어 세 살 아이들은 두 살 동생들을 초대해 직접 차를 따라 준다.
넘치지 않게 천천히 차를 따르고, 두 손으로 찻잔을 건네는 작은 행동 속에는 예절과 배려, 돌봄의 마음이 담긴다. 차를 받아 마신 아이가 다음해에는 동생에게 차를 따라 주는 형이 된다. 인동의 중양절은 돌봄을 받고 다시 돌봄을 건네는 순환의 교육이다.




붓글씨로 완성하는 초등이음교육
다섯 살 아이들은 마당 평상 위에 현수막 천을 펼치고 붓을 든다. 아이들은 동생들에게 보여줄 ‘중양절’ 현수막을 직접 디자인하고, 점심 뒤에는 붓과 먹, 한지로 서예 작품을 완성한다.
한 획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쓰고, 또 고쳐 쓴다. 작품을 완성한 뒤에는 스스로 걸어 전시한다. 글자를 미리 익히는 선행학습이 아니라, 하나의 일을 시작해 끝까지 마무리하는 집중력과 주도성을 기르는 과정이다.
붓을 쥐는 힘, 한 글자를 완성하는 끈기, 자신의 작품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자신감은 어린이집과 초등학교를 잇는 힘이 된다. 전통문화가 단순한 체험 재료가 아니라 아이들의 감상과 표현, 성취의 자리에 놓이는 것이다.
가장 어린 영아들은 마당의 가을 햇살 아래서 단동십훈의 몸짓과 노랫말, 까꿍놀이와 바깥놀이를 즐긴다. 아직 산에 오르거나 전을 부치지는 못하지만, 몸과 정서의 기초를 다지는 이 시간이 훗날 형이 되어 동생의 손을 잡아 줄 힘의 뿌리가 된다.
절기가 교사가 되는 생태교육
생태유아교육은 아이를 자연의 리듬 속에 놓아 주는 교육이다. 세시풍속은 우리 조상들이 오랜 세월 다듬어 온 삶의 달력이기도 하다. 단오에는 창포를 만나고, 한가위에는 송편을 빚으며, 중양절에는 산에 올라 국화를 만난다.
교사가 주제를 먼저 정하지 않아도 계절이 아이들에게 교육의 주제를 건넨다. 아이들은 해마다 같은 절기를 조금씩 다른 키와 다른 역할로 맞으며, 시간의 순환과 자신의 성장을 몸으로 이해하게 된다.
인동어린이집의 중양절 활동에는 먹거리교육도 담겨 있다. 찹쌀반죽 위에 꽃을 올려 부치는 전, 형이 동생에게 건네는 꽃차를 통해 아이들은 밥상 위 음식이 자연과 사람의 손을 거쳐 온다는 사실을 배운다.
반과 반을 잇고, 돌봄과 교육을 잇다
인동어린이집의 이음교육은 세 겹으로 이어진다. 먼저 형과 동생을 잇는다. 산길에서 형은 동생의 손을 잡고, 찻상에서는 동생의 잔에 먼저 차를 따른다.
반과 반도 잇는다. 네 살 아이들의 꽃전은 세 살 아이들의 찻상으로, 세 살 아이들의 차는 두 살 동생들의 잔으로 이어진다. ‘우리 반’에서 만든 것이 ‘우리 원’의 기쁨이 되는 경험이다.
어린이집과 학교도 잇는다. 다섯 살 아이들의 서예 활동은 붓을 쥐는 힘과 집중력, 표현력, 작품을 끝까지 완성하는 태도를 기른다. 이는 학습을 앞당기는 것이 아니라 배움을 스스로 마무리하는 힘을 기르는 초등이음교육이다.
세시풍속을 함께 즐기는 날에는 나이가 다른 아이들이 같은 리듬으로 움직인다. 함께 버스를 타고, 함께 걷고, 함께 점심을 먹는다. 그 안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나이에 맞는 역할을 맡는다. 영아는 몸과 마음을 열고, 큰 아이들은 전판과 찻주전자, 붓을 다루며 책임을 배운다.
인동어린이집이 말하는 대가족형 일과 운영, 이른바 ‘따로 또 같이’의 모습이다. 같은 나이끼리만 있을 때 아이들이 경쟁을 먼저 배울 수 있다면, 나이가 다른 아이들이 함께할 때는 서로의 속도를 살피고 함께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AI가 대신할 수 없는 힘, 비인지 능력
중양절 하루를 보낸 아이들이 글자를 몇 개 더 외우거나 숫자를 더 빨리 세게 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아이들 안에는 더 오래 남을 힘이 자란다.
산길을 끝까지 걸어 내려오는 과정에서는 끈기와 자기조절이 자라고, 뜨거운 전판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인내를 익힌다. 동생의 걸음에 맞춰 걷고, 동생의 찻잔에 먼저 차를 따르면서 공감과 배려를 배운다. 다른 반 친구에게 꽃전을 건네며 협력과 소속감을 느끼고, 붓글씨를 여러 번 고쳐 쓰면서 주도성과 회복력을 키운다.
가을 산의 빛깔, 국화 향, 꽃전을 부치는 냄새, 먹의 감촉을 온몸으로 만나며 심미감과 자연에 대한 경외감도 자란다.
이러한 힘을 교육학에서는 비인지 능력이라고 부른다. 지식과 계산, 검색의 영역은 인공지능이 빠르게 대신할 수 있지만, 힘든 길을 끝까지 가는 태도와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능력, 함께 살아가는 감수성은 기계가 대신할 수 없다.
비인지 능력은 교재만으로 가르치기 어렵다.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서 자기조절을 배우고, 어린 존재를 돌보는 과정에서 공감을 익히며, 자신이 만든 것을 다른 이와 나눌 때 협력의 기쁨을 안다. 인동어린이집이 혼합연령 활동과 세시풍속, 흙과 산, 부엌을 교육의 장으로 삼는 이유다.
산에 오른 아이, 꽃전을 부친 아이, 동생에게 차를 따라 준 아이.
그 아이가 자라 인공지능이 대신할 수 없는 사람으로 성장한다.
어진 아이가 세상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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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중심 놀이를 실천하면서
아이들이 스스로 만들어 가는 놀이를 함께하다 보니, 교사인 저도 자연스럽게 놀이에 빠져 함께 웃고 즐기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한 놀이는 아이들의 관심과 경험이 더해지면서 놀이의 모습이 계속해서 달라지고 확장되는 과정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제가 임신을 하게 된 이후에는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저를 '임산부'로 바라보며 배 속 아기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뱃속 아이를 챙기면서 생명에 대한 관심과 사람에 대한 배려가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나타났습니다. 저의 임신을 계기로 아이들은 임산부가 되어 보거나 아기를 돌보는 아기놀이를 더욱 풍성하게 이어 갔습니다. 세시풍속의 바탕에는 우리 선조의 두레정신이 흐르고 있습니다. 일상의 삶 속에서 어울림이 일고, 그 안에서 배려와 사랑, 우정의 씨앗이 발아하는 모습을 체감합니다. 공동체 의식은 학습으로 되지 않습니다. 세시풍속을 모두가 모여 잔치로 치르면서 아이들 안에 공동체 의식이 자연스럽게 내면화되어 가는 것을 봅니다. 아이중심 놀이를 실천하면서, 아이들의 관심을 세심하게 바라보고 기다려 주는 것만으로도 놀이가 새로운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펼쳐질 수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번 놀이공유회와 세시풍속을 경험하면서, 함께 키워 가는 우리의 교육 안에 돌봄의 가치와 공동체 의식이 주는 배려와 사랑이 있음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봄의 삼짇날부터 단오, 유두잔치, 칠월칠석, 한가위, 그리고 중양절까지 — 절기마다 준비하며 아이들과 함께했던 놀이를 돌아보는 과정도 뜻깊었습니다. 무엇보다 학부모님들께서 아이들 놀이의 시작과 지금의 모습을 보며 놀라워하시고, 때로는 웃으며 함께 즐겨 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의 놀이를 가정과 나누는 기쁨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즐겁게 놀이하는 순간을 가까이에서 함께하고, 그 안에서 자라나는 생각과 경험을 발견할 수 있었던 시간이기에, 더욱 특별한 놀이공유회이자 가을을 만끽하는 중양절이었습니다. 
국공립 인동어린이집 두 살 반 교사 윤슬 조은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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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홉이 겹치는 날, 돌봄과 교육을 생각합니다
중양절은 양의 수 가운데 가장 큰 아홉이 두 번 겹치는 날입니다. 옛 어른들은 이날을 가장 기운이 찬 날로 여겨 높은 곳에 올라 멀리 보고, 국화를 띄운 술과 전으로 이웃과 어울렸습니다. 그리고 이날은 노인의 날이기도 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10월 2일을 노인의 날로 정한 것도 중양절에서 온 것입니다. 오래 산 사람을 높이고, 함께 늙어 가는 이웃을 돌아보는 날. 저는 중양절이 가진 이 뜻이 어린이집의 하루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돌봄은 가르침보다 먼저 있는 것입니다. 아이가 태어나 처음 받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돌봄이고, 아이가 자라서 처음 하는 것도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돌봄입니다. 두 살 형이 한 살 동생의 손을 잡고 산길을 걷는 일, 세 살 아이가 두 살 동생의 잔에 차를 따라 주는 일 — 이것은 교육 활동이기 전에 돌봄입니다. 받아 본 아이가 줄 줄 알게 되고, 돌봄을 준 아이가 다시 돌봄을 받을 줄 아는 사람으로 자랍니다. 인동이 혼합연령을 택한 이유, 세시풍속을 택한 이유는 결국 하나입니다. 아이가 돌봄의 순환 안에서 자라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유보통합의 시대에 돌봄과 교육을 나누어 말하는 것을 자주 듣습니다. 어린이집은 돌봄, 유치원은 교육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산에 오르는 아이를 보면 그 둘은 한 몸입니다. 힘들어하는 동생을 기다려 주는 형의 마음이 돌봄이고, 그 마음을 길러 주는 하루가 교육입니다. 조은애 선생님의 글에서처럼, 선생님의 몸 안에 자라는 생명을 아이들이 챙기기 시작했을 때 생명에 대한 관심과 사람에 대한 배려가 저절로 행동이 되었습니다. 누가 가르친 것이 아닙니다. 돌봄이 있는 곳에서 교육이 저절로 일어난 것입니다. 절기는 해마다 돌아옵니다. 올해 한 살이던 아이는 내년 중양절에 두 살 형이 되어 새 동생의 손을 잡을 것입니다. 올해 차를 받아 마신 아이는 내년에 차를 따라 줄 것입니다. 저는 이 순환이 인동이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라고 믿습니다. 어른이 아이에게 세상을 다 가르쳐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돌봄을 받고 돌봄을 주는 자리를 해마다 마련해 줄 수는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아이는 어진 사람으로 자랍니다. 
국공립 인동어린이집 원장 유향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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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병춘, 여재민 공동취재
- 도움말 유향란 인동어린이집 원장 (유아교육학 박사)
(이 기획기사는 2026년도 충청남도 지역미디어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취재한 것입니다.)
[2026 지역미디어지원사업] 유보통합 기반 생태유아교육 ‘생태놀이를 말하다’ 6 절기와 세시풍속 속 생태교육
산에 오르고, 꽃전을 부치고, 차를 따르는 날
중양절 세시풍속으로 배우는 돌봄과 생태교육…AI 시대 ‘비인지 능력’을 키우다
음력 9월 9일은 양(陽)의 수 가운데 가장 큰 수인 9가 두 번 겹치는 중양절(重陽節)이다. 옛사람들은 이날 높은 곳에 올라 가을 하늘을 바라보는 등고(登高)를 즐기고, 국화전과 국화차를 나누며 이웃과 정을 나눴다.
국공립 인동어린이집은 이 오래된 세시풍속을 아이들의 생활과 놀이로 되살리고 있다. 한 살·두 살 아이들은 채운산을 오르고, 네 살 아이들은 꽃전을 부치며, 세 살 아이들은 동생에게 차를 따른다. 다섯 살 아이들은 붓을 들어 ‘중양절’ 현수막과 서예 작품을 완성한다.
천년 전의 풍속은 이렇게 다섯 살 아이의 하루가 된다. 자연과 전통, 돌봄과 배움이 한데 어우러지는 인동어린이집의 중양절은 유보통합 시대 생태유아교육이 지향해야 할 모습을 보여준다.
산길에서는 형이 동생의 손을 잡는다
중양절 아침, 한 살과 두 살 아이들은 인동버스를 타고 채운산으로 향한다. 산 중턱에 내려선 두 살 형들은 한 살 동생의 손을 꼭 잡고 걷는다. 길가에 떨어진 솔방울과 도토리, 곱게 물든 잎을 줍고, 자연물을 활용해 얼굴을 꾸며 본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은 버스가 아닌 아이들의 발걸음으로 이어진다. 힘들어도 제 발로 걸어 내려오고, 빠른 아이는 느린 동생을 기다린다. 높은 곳에 올라 가을을 맞이하던 옛 등고 풍속이 아이들의 걸음 속에서 되살아나는 순간이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단순히 산을 오르는 데 그치지 않는다. 몸을 움직이며 자연을 만나고, 동생의 속도에 맞춰 관계를 배우며, 끝까지 걸어 내려오는 과정에서 성취감과 끈기를 익힌다.
네 살의 꽃전, 세 살의 찻상으로 건너가다
같은 시간 네 살 아이들의 부엌에서는 전판이 달궈진다. 아이들은 찹쌀반죽을 동그랗게 펴고 그 위에 꽃을 얹어 화전을 부친다. 뜨거운 전판 앞에서는 차례를 기다리고, 뒤집개를 조심스럽게 쥐어 본다.
하지만 아이들이 만든 꽃전은 자기 반에서만 먹지 않는다. 네 살 아이들은 정성껏 부친 꽃전을 접시에 담아 세 살 동생들의 찻상으로 가져간다. 내가 만든 음식이 다른 친구에게 기쁨이 되는 경험, 그 자체가 나눔의 교육이 된다.
세 살 아이들은 찻상 앞에 앉아 차를 우리는 법과 잔을 건네는 법을 배운다. 네 살 형들이 가져온 꽃전이 찻상에 오르면, 아이들은 꽃차와 함께 전을 나눠 먹는다. 이어 세 살 아이들은 두 살 동생들을 초대해 직접 차를 따라 준다.
넘치지 않게 천천히 차를 따르고, 두 손으로 찻잔을 건네는 작은 행동 속에는 예절과 배려, 돌봄의 마음이 담긴다. 차를 받아 마신 아이가 다음해에는 동생에게 차를 따라 주는 형이 된다. 인동의 중양절은 돌봄을 받고 다시 돌봄을 건네는 순환의 교육이다.
붓글씨로 완성하는 초등이음교육
다섯 살 아이들은 마당 평상 위에 현수막 천을 펼치고 붓을 든다. 아이들은 동생들에게 보여줄 ‘중양절’ 현수막을 직접 디자인하고, 점심 뒤에는 붓과 먹, 한지로 서예 작품을 완성한다.
한 획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쓰고, 또 고쳐 쓴다. 작품을 완성한 뒤에는 스스로 걸어 전시한다. 글자를 미리 익히는 선행학습이 아니라, 하나의 일을 시작해 끝까지 마무리하는 집중력과 주도성을 기르는 과정이다.
붓을 쥐는 힘, 한 글자를 완성하는 끈기, 자신의 작품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자신감은 어린이집과 초등학교를 잇는 힘이 된다. 전통문화가 단순한 체험 재료가 아니라 아이들의 감상과 표현, 성취의 자리에 놓이는 것이다.
가장 어린 영아들은 마당의 가을 햇살 아래서 단동십훈의 몸짓과 노랫말, 까꿍놀이와 바깥놀이를 즐긴다. 아직 산에 오르거나 전을 부치지는 못하지만, 몸과 정서의 기초를 다지는 이 시간이 훗날 형이 되어 동생의 손을 잡아 줄 힘의 뿌리가 된다.
절기가 교사가 되는 생태교육
생태유아교육은 아이를 자연의 리듬 속에 놓아 주는 교육이다. 세시풍속은 우리 조상들이 오랜 세월 다듬어 온 삶의 달력이기도 하다. 단오에는 창포를 만나고, 한가위에는 송편을 빚으며, 중양절에는 산에 올라 국화를 만난다.
교사가 주제를 먼저 정하지 않아도 계절이 아이들에게 교육의 주제를 건넨다. 아이들은 해마다 같은 절기를 조금씩 다른 키와 다른 역할로 맞으며, 시간의 순환과 자신의 성장을 몸으로 이해하게 된다.
인동어린이집의 중양절 활동에는 먹거리교육도 담겨 있다. 찹쌀반죽 위에 꽃을 올려 부치는 전, 형이 동생에게 건네는 꽃차를 통해 아이들은 밥상 위 음식이 자연과 사람의 손을 거쳐 온다는 사실을 배운다.
반과 반을 잇고, 돌봄과 교육을 잇다
인동어린이집의 이음교육은 세 겹으로 이어진다. 먼저 형과 동생을 잇는다. 산길에서 형은 동생의 손을 잡고, 찻상에서는 동생의 잔에 먼저 차를 따른다.
반과 반도 잇는다. 네 살 아이들의 꽃전은 세 살 아이들의 찻상으로, 세 살 아이들의 차는 두 살 동생들의 잔으로 이어진다. ‘우리 반’에서 만든 것이 ‘우리 원’의 기쁨이 되는 경험이다.
어린이집과 학교도 잇는다. 다섯 살 아이들의 서예 활동은 붓을 쥐는 힘과 집중력, 표현력, 작품을 끝까지 완성하는 태도를 기른다. 이는 학습을 앞당기는 것이 아니라 배움을 스스로 마무리하는 힘을 기르는 초등이음교육이다.
세시풍속을 함께 즐기는 날에는 나이가 다른 아이들이 같은 리듬으로 움직인다. 함께 버스를 타고, 함께 걷고, 함께 점심을 먹는다. 그 안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나이에 맞는 역할을 맡는다. 영아는 몸과 마음을 열고, 큰 아이들은 전판과 찻주전자, 붓을 다루며 책임을 배운다.
인동어린이집이 말하는 대가족형 일과 운영, 이른바 ‘따로 또 같이’의 모습이다. 같은 나이끼리만 있을 때 아이들이 경쟁을 먼저 배울 수 있다면, 나이가 다른 아이들이 함께할 때는 서로의 속도를 살피고 함께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AI가 대신할 수 없는 힘, 비인지 능력
중양절 하루를 보낸 아이들이 글자를 몇 개 더 외우거나 숫자를 더 빨리 세게 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아이들 안에는 더 오래 남을 힘이 자란다.
산길을 끝까지 걸어 내려오는 과정에서는 끈기와 자기조절이 자라고, 뜨거운 전판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인내를 익힌다. 동생의 걸음에 맞춰 걷고, 동생의 찻잔에 먼저 차를 따르면서 공감과 배려를 배운다. 다른 반 친구에게 꽃전을 건네며 협력과 소속감을 느끼고, 붓글씨를 여러 번 고쳐 쓰면서 주도성과 회복력을 키운다.
가을 산의 빛깔, 국화 향, 꽃전을 부치는 냄새, 먹의 감촉을 온몸으로 만나며 심미감과 자연에 대한 경외감도 자란다.
이러한 힘을 교육학에서는 비인지 능력이라고 부른다. 지식과 계산, 검색의 영역은 인공지능이 빠르게 대신할 수 있지만, 힘든 길을 끝까지 가는 태도와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능력, 함께 살아가는 감수성은 기계가 대신할 수 없다.
비인지 능력은 교재만으로 가르치기 어렵다.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서 자기조절을 배우고, 어린 존재를 돌보는 과정에서 공감을 익히며, 자신이 만든 것을 다른 이와 나눌 때 협력의 기쁨을 안다. 인동어린이집이 혼합연령 활동과 세시풍속, 흙과 산, 부엌을 교육의 장으로 삼는 이유다.
산에 오른 아이, 꽃전을 부친 아이, 동생에게 차를 따라 준 아이.
그 아이가 자라 인공지능이 대신할 수 없는 사람으로 성장한다.
어진 아이가 세상을 연다.
아이중심 놀이를 실천하면서
아이들이 스스로 만들어 가는 놀이를 함께하다 보니, 교사인 저도 자연스럽게 놀이에 빠져 함께 웃고 즐기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한 놀이는 아이들의 관심과 경험이 더해지면서 놀이의 모습이 계속해서 달라지고 확장되는 과정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제가 임신을 하게 된 이후에는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저를 '임산부'로 바라보며 배 속 아기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뱃속 아이를 챙기면서 생명에 대한 관심과 사람에 대한 배려가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나타났습니다. 저의 임신을 계기로 아이들은 임산부가 되어 보거나 아기를 돌보는 아기놀이를 더욱 풍성하게 이어 갔습니다.
세시풍속의 바탕에는 우리 선조의 두레정신이 흐르고 있습니다. 일상의 삶 속에서 어울림이 일고, 그 안에서 배려와 사랑, 우정의 씨앗이 발아하는 모습을 체감합니다. 공동체 의식은 학습으로 되지 않습니다. 세시풍속을 모두가 모여 잔치로 치르면서 아이들 안에 공동체 의식이 자연스럽게 내면화되어 가는 것을 봅니다. 아이중심 놀이를 실천하면서, 아이들의 관심을 세심하게 바라보고 기다려 주는 것만으로도 놀이가 새로운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펼쳐질 수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번 놀이공유회와 세시풍속을 경험하면서, 함께 키워 가는 우리의 교육 안에 돌봄의 가치와 공동체 의식이 주는 배려와 사랑이 있음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봄의 삼짇날부터 단오, 유두잔치, 칠월칠석, 한가위, 그리고 중양절까지 — 절기마다 준비하며 아이들과 함께했던 놀이를 돌아보는 과정도 뜻깊었습니다. 무엇보다 학부모님들께서 아이들 놀이의 시작과 지금의 모습을 보며 놀라워하시고, 때로는 웃으며 함께 즐겨 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의 놀이를 가정과 나누는 기쁨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즐겁게 놀이하는 순간을 가까이에서 함께하고, 그 안에서 자라나는 생각과 경험을 발견할 수 있었던 시간이기에, 더욱 특별한 놀이공유회이자 가을을 만끽하는 중양절이었습니다.
국공립 인동어린이집 두 살 반 교사 윤슬 조은애
아홉이 겹치는 날, 돌봄과 교육을 생각합니다
중양절은 양의 수 가운데 가장 큰 아홉이 두 번 겹치는 날입니다. 옛 어른들은 이날을 가장 기운이 찬 날로 여겨 높은 곳에 올라 멀리 보고, 국화를 띄운 술과 전으로 이웃과 어울렸습니다. 그리고 이날은 노인의 날이기도 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10월 2일을 노인의 날로 정한 것도 중양절에서 온 것입니다. 오래 산 사람을 높이고, 함께 늙어 가는 이웃을 돌아보는 날. 저는 중양절이 가진 이 뜻이 어린이집의 하루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돌봄은 가르침보다 먼저 있는 것입니다. 아이가 태어나 처음 받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돌봄이고, 아이가 자라서 처음 하는 것도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돌봄입니다. 두 살 형이 한 살 동생의 손을 잡고 산길을 걷는 일, 세 살 아이가 두 살 동생의 잔에 차를 따라 주는 일 — 이것은 교육 활동이기 전에 돌봄입니다. 받아 본 아이가 줄 줄 알게 되고, 돌봄을 준 아이가 다시 돌봄을 받을 줄 아는 사람으로 자랍니다. 인동이 혼합연령을 택한 이유, 세시풍속을 택한 이유는 결국 하나입니다. 아이가 돌봄의 순환 안에서 자라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유보통합의 시대에 돌봄과 교육을 나누어 말하는 것을 자주 듣습니다. 어린이집은 돌봄, 유치원은 교육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산에 오르는 아이를 보면 그 둘은 한 몸입니다. 힘들어하는 동생을 기다려 주는 형의 마음이 돌봄이고, 그 마음을 길러 주는 하루가 교육입니다. 조은애 선생님의 글에서처럼, 선생님의 몸 안에 자라는 생명을 아이들이 챙기기 시작했을 때 생명에 대한 관심과 사람에 대한 배려가 저절로 행동이 되었습니다. 누가 가르친 것이 아닙니다. 돌봄이 있는 곳에서 교육이 저절로 일어난 것입니다.
절기는 해마다 돌아옵니다. 올해 한 살이던 아이는 내년 중양절에 두 살 형이 되어 새 동생의 손을 잡을 것입니다. 올해 차를 받아 마신 아이는 내년에 차를 따라 줄 것입니다. 저는 이 순환이 인동이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라고 믿습니다. 어른이 아이에게 세상을 다 가르쳐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돌봄을 받고 돌봄을 주는 자리를 해마다 마련해 줄 수는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아이는 어진 사람으로 자랍니다.
국공립 인동어린이집 원장 유향란
- 여병춘, 여재민 공동취재
- 도움말 유향란 인동어린이집 원장 (유아교육학 박사)
(이 기획기사는 2026년도 충청남도 지역미디어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취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