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방면에서 치열했던 논산출신 독립운동가들

놀뫼신문
2019-11-20


논산 출신으로 2019년 현재까지 독립유공자로 공훈을 받은 독립운동가는 전체 69명으로 확인된다. 

특히 다른 지역에 비해 국내항일 활동을 펼친 독립운동가가 많았다. 독립운동은 폭넓게 항일을 목표로 한 의병을 시작으로 계몽운동, 의열투쟁, 3·1운동, 문화운동, 학생운동, 해외 독립운동, 임시정부, 광복군활동, 그 외 국내의 독립운동으로 나눌 수 있다. 

논산 출신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상을 살펴보는 것으로 논산의 독립운동의 방향을 살펴보는 방법도 유용하다.

(다음은 정을경 충남역사문화연구원의 발표논문 "논산지역의 독립운동"에서 일제강점기 논산지역의 상황→ 3·1 만세운동의 전개→ 청년운동 및 농민․노동운동에 이어서 나오는 4.논산 출신 독립운동가와 활동상을 요약한 것이다. -편집자 주) 



의병활동을 전개한 논산 출신 유공자는 권기수, 권종해, 김운서, 이규철 4명이다. 다음으로 계몽운동을 전개한 인물은 김지수, 윤이병, 송재기, 이근석 등이다. 다음으로 논산의 독립운동가들이 가장 많이 참여한 독립운동은 군자금 모집, 사회주의 운동, 교육운동 등 국내항일운동이었다. 

군자금 모집 : 군자금 모집은 임시정부에 송금하기 위함이 대부분이었다. 강연희, 정인행, 윤상긍은 광복단(光復團) 단원들과 함께 군자금을 모집하였고, 권충락은 만주의 흥업단(興業團)에 가입하여 국내에 여러 차례 잠입하여 군자금을 모집하였고, 백남식은 대한건국단(大韓建國團)을 조직하여 전국적으로 군자금 모집활동을 펼쳤다. 안종운과 임병완은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에 가입하여 부호들을 대상으로 군자금을 모집하였고, 윤교병과 이남규, 이승조, 홍병두, 고상준은 충남 일대를 중심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군자금을 모금하였고, 윤상기는 대한구국단(大韓救國團)에 가입하여 논산과 익산지역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윤태병도 독립군 단체를 도울 군자금 모집활동을 위해 대한건국단(大韓建國團)을 조직하여 군자금모금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외에 군자금은 해외 독립운동 단체를 지원하기 위해 활용되기도 하였다. 송종빈은 전북 및 충남 일대에서 해외 독립운동 단체를 지원하기 위한 군자금 모금활동을 펼쳤다. 

사회주의 운동 : 사회주의 운동을 펼친 인물로 김영만과 신표성, 조동빈이 있다. 김영만은 몇 차례의 옥고를 치르면서도 국내외에서 사회주의 운동을 통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으며, 신표성은 1920년대 초부터 서울청년회, 경성노동회(京城勞動會) 등에 가입하여 대중운동과 사회운동을 통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조동빈은 1930년대 수십 회에 걸쳐 현 사회제도의 불합리를 변혁하자는 독서 지도를 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국내 교육운동 : 교육운동을 전개한 김영만은 일본제국주의를 비판하면서 조선의 독립과 민족의식 고취활동을 전개하였다. 김조현은 양촌면에 육영학교(育英學校)를 설립하여 항일민족의식을 고취하면서 민족교육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뿐 아니라 그는 이후 독립군자금 조달, 대종교인의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한편 최경락은 1941년 벌곡면 한천리의 벌곡공립국민학교 교사로 부임하여 1943년 6월 국사 수업시간에 우리말로 강의를 하여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1919년 3·1만세운동 이외에도 제2의 독립만세운동을 다시 계획하기도 하였다. 신현구는 서울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독립운동을 구체적으로 전개하기 위한 추진체로 1919년 5월 대한독립애국단(大韓獨立愛國團)을 결성하여 단장으로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의 선전활동과 재정자금의 조달, 국내 조직망을 통한 임시정부 연통부로서 활약하였다. 그리고 1919년 11월 대규모의 만세운동을 연합하여 거행하기 위해 추진하였으나, 조직의 파괴로 무산되었다. 이내수도 대동단이 계획한 제2의 독립만세운동에 민족대표 중 한명으로 서명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또한 3·1만세운동 직후 서울에서 전 조선민족의 대단결을 표방한 대동단(大同團)의 유림단(儒林團) 대표로 추대되는 등 활동하였다.

무정부주의운동을 전개한 독립활동도 전개하였다. 이을규, 김성현, 오철식, 윤상기, 윤홍중, 이중식, 임원빈, 장인식 등이 활동하였다. 서영원은 학생운동을 전개하였다. 논산 출신 독립운동가들은 만주방면 독립운동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김병희는 블라디보스톡에서, 김영숙은 만주 봉천성에 설립된 동창학교(東昌學校)로 가서, 박창래는 1920년대 중국 만주 북간도의 독립운동기지인 연길현에 이주하여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방한민은 1923년 7월 4일 간도에서 동양학원(東洋學院)의 설립을 추진하였으며, 백순은 1909년 중국 만주 북간도로 망명하여 간민회(墾民會)의 간부로 한인사회를 위해 활동하였다. 양기하는 만주로 망명하여 유하현 삼원보에서 박장호(朴長浩) 등과 함께 교육사업에 전념하여 젊은이들에게 항일민족의식을 심어주었다. 

임시정부 활동 참여한 독립운동가도 있다. 신현창은 대한독립애국단에 가입하여 군자금을 갖고 상해의 임시정부에 밀파되어 전달하였다. 이병주는 3·1만세운동으로 출옥 후 상해로 망명하여 태평양회의 외교후원회 서기,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경기도 대의원을 맡아 조국의 독립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광복군과 관련된 활동을 한 인물은 김욱배, 최문식, 홍구표 3명이다. 김욱배는 광복군 제2지대 제1구대원으로 입대하여 충청도반의 제1조에 소속되어 국내진입을 계획하였다. 최문식은 광복군 제2지대에 입대하여 활동하였다. 홍구표는 중국 하남성 귀덕(歸德)에서 일군을 탈출하여 광복군 제2지대에 입대한 활동을 하였다.


- 정을경(충남역사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