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름날 부럼 깨며 깨닫는 한민족의 지혜

놀뫼신문
2019-02-20

[정월대보름과 세시풍속 교육]

대보름날 부럼 깨며 깨닫는 한민족의 지혜


1년 12달, 사계절 24절기가 골고루다. 명절과 절기마다 소중한 세시풍속들이 있다. 농경사회를 벗어나면서 절기도, 세시풍속도 툇방늙은이처럼 밀려났다. 논산 정월대보름의 대표격인 논산문화원의 행사계획이 올해도 취소되었다. 작년에는 그나마 장애인의 동계 제전인 패럴림픽 점화식으로 가름되었지만, 올해는 구제역으로 불길조차 점화되지 않는다. 동네마다 하늘향해 공든탑였던 달집의 숫자는 급감하고 교육기관에서도 정월대보름 같은 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트렌드이다.

논산 노성의 이명한전통문화체험 학교는 초입부터 24절기 안내 말뚝이 줄줄이다. 본지 2017-04-20일자로 탐방한 지산도시농업육묘장도 “달력교육”의 본산이다. 유아교육기관 중에서 인동어린이집의 세시풍습 교육은 전국 모델급이다. 지난 설날에는 가래떡 뽑기와 썰기로 떡국 끓여먹기를 하였다. 이 외에도 지역어르신께 세배, 연 만들어서 날리기와 널뛰기, 윷놀이 등 전래놀이를 하였다.

19일에는 어김없이 정월대보름 잔치를 벌인다. 18일 ‘새해 소원 적기’부터 시작한다. 솔가지 줍기를 할 때도 있는데, 비가 오지 않으면 솔가지 모아모아 만든 달집에다가 소지 끼워서 달집태우기를 한다. 날씨가 풀어지지 않아서 줄다리기까지는 못하지만, 교실에서는 더위팔기, 부럼깨물기, 오곡밥 먹기를 함께 한다.

인동어린이집이 잊혀져가는 세시풍속 교육을 고집하고 지속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교육철학을 유향란 원장(교육학박사)의 직접화법으로 들어본다.

-이진영 기자



“세시풍속, 그게 뭐예요?”


인동 어린이집 정월대보름 놀이라고 해서 유별난 것은 없다. 정월대보름이 어떤 날인지?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놀이를 하는지 알아보고 함께 하는 자리이다. 올해도 지금까지처럼 똑같은 먹거리, 놀거리이다. 형님들은 동생들에게 제법 설명을 잘 해준다. 아이들은 작년처럼 여전히 신나라한다. 친구들과 부럼 까먹고 점심으로 오곡밥과 나물을 먹는다.

올해도 아이들과 소원 쓰거나 그려보기를 하였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엄마 아빠 돈 많이 벌게 해주세요. 나는 소방관차 되고 싶어요. 아빠가 되게 해주세요… 공주되고 싶어요.. ” 등등의 소원이다. 작년에는 마당에 둥글게 모여 풍등을 날리며 소원을 다함께 빌었다. 올해는 소원 적은 종이와 함께 겨울에 만들어 본 연을 달집 속에 집어넣어 태워보려 한다. 달집이 잘 타면 우리 아이들에게도 행복이 넘실거리고 동네도, 어린이집도 풍년이 온다 하니 불꽃이 훨훨 일어나면 좋겠다는 염원도 추가다.

아이들은 세시풍속 놀이를 할 때마다 옛날 이야기 속 주인공처럼 상상 웃음을 짓는다. 내가 어렸을 때처럼 영문도 모른 채 따라하면서 무서움 반, 재미 반으로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운다. 이렇게 세시풍속 잔치를 때마다 어른과 아이들에게서 서로 일치되는 반응을 목도하게 된다. 우리의 정서를 몸으로 확인한 듯한 묘한 기분이 인다. 아이들은 이런 생활 속의 경험에서 진짜 앎으로 영글어 간다. 그렇게 한국 아이다운 추억이 쌓이면서 언젠가는 ‘아하!~’하고 지혜를 체득해갈 거라 믿는다.


보름날, 멋 모르고 따라 했던 추억


이맘때쯤이면 내 어릴 적 정월대보름날 아침으로 돌아간다. 분주하신 엄마는 부스럼 생기지 말라고 부럼을 챙겨주셨다.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깨먹는 재미는 신났다. 생무를 먹어야 무사태평 아프지 않는다는 엄마 말을 무조건 믿으며 맛없는 무를 먹었다. 오곡밥은 알록달록 영양 듬쁙 최고의 밥이지만 달달한 밤만 골라먹다 꾸중 듣던 생각도 난다. 학교에 오자마자 “내더위 사가라”며 더위 팔던 기억, 운동장 같던 논에서 깡통 속에 불 넣고 빙글빙글 돌리던 모습이 너무 멋졌던 오빠들, 오빠들 따라다니며 겨우 작은 깡통 하나 얻어 어설프게 흉내 내보던 기억........ 복조리 팔러온 낯선 대학생오빠들, 먹거리, 놀거리, 볼거리 풍성했던 그날 밤, 달이 떠오르면 엄청 커진 달을 보며 소원 빌던 정월 대보름 길었던 그 하루~~

나는 우리 미래의 표상인 아이들이 우리 조상 오천년 지혜와 삶의 정취를 맛볼 수 있도록, 다름 아닌 한국인아이로 자라면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어린이집 개원 이래 아이들과 세시풍속을 연중 삶교육으로 실시해왔다. 세시풍속 프로그램은 우리 것을 사랑하는 아이, 한국아이로 키우고자 시도된 생태적 유아교육프로그램의 하나이다. 세시풍속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 먹거리, 볼거리, 놀거리를 경험하며 우리 겨레의 얼과 지혜를 체감하는 놀이교육이자 우리의 삶 자체이다.


전세계 흥과 끼의 기폭제될 토종교육


삶이라는 화두까지 끌고나온 데는 이유가 있다. 사람들에게 “토종닭이 좋은지? 양계닭이 좋은지?” 물으면 이구동성 토종닭이다. 종자전쟁이 시작된 지 이미 오래고, 토종종자는 엄청난 자산이요 자본이다. 토종교육의 경우는 어떠한가? 우리 나라 아이들을 보면 먹거리, 볼거리, 놀거리는 물론 교육까지도 서양 흉내내기 일색이다. 입으로는 전통문화를 존중해야 한다 말들 하지만 교육은 교육과정부터 서양메뉴판이다.

영화 ‘보헤미안랩소디’의 주인공 프레디 머큐리는 삶속에서 느낀 자유로움과 내면의 슬픔을 음악으로 쏟아내었다. 대개 돈 주고 보는 영화는 한번이지만, 나는 이 영화를 여러 차례 보게 되었다. 경기장에 모인 전 세계인이 따라 부르는 “Love of my life” 신드롬은 요즘도 이어진다. 최근 메이저리그 명문구단인 뉴욕 메츠경기장이 꽉 차면서 창공이 떼창으로 폭발하였다. 방탄소년단(BTS)의 노래가 터질 때마다 떼창을 이어가는 세계적 진풍경은, 보헤미안 랩소디 마지막 신(scene)의 오버랩인 듯싶다.

논산시민을 사로잡았던 강남스타일의 싸이, 뉴욕의 BTS가 세계를 하나로, 외국인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으며 때론 떼창으로, 때론 눈물로 뒤범벅 만드는 비결은 대체 무엇일까? 우리 민족은 애환 속에서도 신명을 잃지 않는 민족이다. 공동체 생활이 몸에 배어 있고 생활 속 감성 스토리가 넘쳐 나기에 세계를 열광시키는 저력도 있다고 느껴진다.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문화, 전통문화가 대한민국 보이그룹을 세계슈퍼스타의 탄생시킨 토종씨앗이라 생각한다.

우리의 토종 문화가 우리 민족의 우수한 DNA이자 세계를 이끌 미래한국의 맹아(萌芽)라고 본다. 세시풍속교육은 아이들에게 오랜 과거와 우리 조상의 지혜를 이어주는 참으로 귀한 염기서열이자 연결고리이다. “정월대보름 즈음, 기해년 올 한해도 풍년과 천하태평을 기원합니다.”


유향란 인동어린이집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