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사랑방] 한여름밤 김홍신~박범신의 고향이야기

놀뫼신문
2019-08-28


지난 24~25일 강경옥녀봉과 근대역사문화거리 일원에서에서 ‘2019 강경 문화재 야행(夜行)’ 행사가 펼쳐졌다. ‘타임캡슐 타고 떠나는 시간여행’이라는 슬로건처럼, 조선 시대 2대 포구로서 술렁이던 밤거리를 재현하고자 하였다. 

강경야행의 하이라이트는, 최근 개장한 강경구락부에서 열린 국민작가 김홍신·박범신의 특강이었다. “그땐 그랬지”라는 큰 제목과 ‘밤에 듣는 강경역사이야기’라는 부제의 포스터에 써 있는 시간은 밤 9~11시. 과연 그 시간까지 누가 남아 있을까 싶었는데 기우였다. 한여름밤 날씨도 좋았다. 야화(夜話)가 야화(夜花)로 피어나는 밤, 논산이 나은 두 소설가 한 사람은 130여 권, 한 사람은 50여권을 육박하는 책 높이만큼 그들의 밤 이야기는 깊었다.


“일만 하고 놀지 않으면 불법” -김홍신


김홍신 작가는 24일 두 번의 강의를 하였다. 5시 김홍신문학관에서 『인생 사용 설명서』라는 제목으로 1시간 반의 긴 강의를 하였다. 김홍신 문학관 개관 이래 저자이자 주인공의 첫 강의였다. 그 강의는 저녁 9시 강경구락부 토크콘서트로 이어졌다. 

정은숙 시낭송가의 사회로 진행된 김 작가의 이야기는 청년기에서 시작한다. 집에서는 의대를 꼭 가라며 재수까지 시켜 놨지만, 하라는 공부는 취미가 없어서 도통 안 하고 뭔가를 써내려가기만 했다는 김홍신. 3: 1이라는 가리방 정보에 건국대 국문과에 원서를 내고 시험을 치뤘지만 낙방. “재수까지 한 마당에 대학을 또 떨어졌으니 이대로 살아서 무엇하랴” 싶어졌단다. 귀향길 열차에서 떨어져 죽으리라 맘먹고 철로를 내려다 보니 통학열차처럼 너무 늦게 가는 서울발 완행열차~~ 한강철교 통과할 때도 몸 던지기 실패ㅠㅜ 논산 집에 와보니 부모님은 3차 준비하여 가면 된다며 등을 두드려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체국에서 두 사람이 찾아왔다, 건국대 합격통지서를 들고서!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20명 정원 모집에 21등을 했는데, 그 중 하나가 입학금을 내지 않아서 한 명 결원이 생긴 것. 이렇게 턱걸이를 해가는 그의 삶 자체가 하나의 소설이다. 『인간시장』이라는 한국 최초의 밀리언셀러 지평을 연 작가는, 영화도 흥행메이커였던 그는, 그러나 입을 떼었다 하면 그의 전공인 픽션(허구)보다 논픽션 다큐멘터리에 천착한다. 

그의 꿈은 천주교 신부가 되는 것이었단다. 그래서일까,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한 편의 설교나 설법처럼 느껴진다. 연사로 나섰다 하면 현수막에 달리는 게 『인생 사용 설명서』이다. “인생에 정답이란 없다. 명답만이 있을 뿐이다.” 그럼 오직 하나뿐인 인생을 대체 어떻게 살아야 좋겠는가? “놀아라”가 그의 인생 매뉴얼 키워드다. “잘 놀다 가지 않으면 불법”이라고 목청을 높이는 그는, 우리 나라 사람들이 일만 하다 보니 놀 줄을 모르는 바보가 되어 버렸다고, 이게 바로 우리네 삶의 비극이라고 갈파한다. 

남 얘기가 아니다. 바로 본인의 삶이 일로, 집필로만 점철되어 왔기에, 여러분은 그렇게 살지 말기를 바란다는 충정이다. 그의 이야기에 골퍼와 캐디가 단골로 등장한다. 고객들은 줄기차게 걸으면서도 좋아라 한다. 돈과 시간이 생기면 또 찾는 곳이 골프장이다. 한편 캐디는 아침 일찍 일어나 돈을 벌면서도 얼굴 인상은 별로다. 일이라고 생각하니 즐겁지 않은 상황ㅜ 이런 때 생각을 바꾸면 된다. 생각과 마음을 바꿔먹으면 세상이 180도 달라진다. 행복 모드로 전환된다. 행복(幸福)이란 단어는 100년 전에 없던 단어다. 대신 만족(滿足)이 있었다. ‘사랑’ 역시 없었고 정(情)이란 단어는 있었다. 내가 지금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웬수덩어리 같지만 그와 함께 미운 정 고운 정 살아간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적이다. 대복이요 참으로 귀한 인연이다. 

불가에서 얘기하는 1겁은 지금 내가 계룡산에 들어가 바늘 하나를 갖고 곡괭이질하여서 평지로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그런 겁이 억만겁, 억겁일 때 비로소 만들어진다는 인연(因緣)! 그러니 인연, 더구나 부부연은 얼마나 소중한가...... 법륜스님, 지관스님, 김수환 추기경과의 교우, 몇 년 동안 접신(接神) 등 지난한 과정을 거치고 거쳐 고산 윤선도의 초상화를 그려낸 서울대 이종상 화백의 처절한 이야기, 경북 예천의 말무덤 이야기, ‘인간’이란 단어는 걷는 존재라는 의미이고 “걷지 않으면 죽은 놈이다”며 건강을 강조하다가 나오는 최첨단 의학상식 .... 그의 이야기 깊이와 넓이는 동서양 종횡무진이다. 

그러니 정해진 1시간이 짧기만 하다. “남은 인생 하고 싶은 것을 맘대로 하라.” “향기로운 인생, 좋은 관상을 만들어가라”.... 기차처럼 길고 긴 그의 이야기 종착역은 궁궐 행사에 등장하는 꽃이다. 조정에서는 경사시 6~8만 송이의 꽃을 내다 거는데, 생화는 절대 안 쓴다. 가장 아름다운 꽃은 백성이기 때문이란다. 백성이란 꽃을 꺾으면 절대 안 되므로 밀랍꽃을 계속해서 만들어가는데.... 꽃을 내다 건 날, 신기하게도 벌과 나비가 운집한다. 꽃술로 진짜 꿀까지 만들어놓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민초들이 찬란한 꽃을 피우자, 논산의 양반정신을 되살리고 남북이 합쳐서 그 8천만이 세계를 이끌어가자.” 시간이 모자란 어느 작은 거인의 외침이다.  



“강경이 흥했다면 귀향하지 않았을지도”- 박범신


25일 밤 열린 박범신 특강은 이선경 시낭송가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전국 팬클럽 회원들을 비롯, 200여 명이 함께 한 야밤이었다. 연무 봉동에서 태어나 강경 학교를 다닌 그의 학창시절, 등하교길 수많은 시간과 상념들이 자신의 작품에 녹아들어가 있다고 술회한다. 특히 단편 소설들 대부분의 배경이 강경이다. 식구, 흉기, 우리들의장례식, 토끼를태운잠수함, 더러운책상, 읍내떡삥이....

 이 중 『읍내떡삥이』는 진명 감독이 “갱경이 떡삥이”로 영화로 찍어 내년 봄쯤 개봉 예정이다. 박 작가는 “시대에 조금은 뒤떨어져 있을 수도 있으나 강경출신 감독이니까 잘해내리라 믿는다”면서 관중석 속의 진명 감독과 스탭진을 응원하는 등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좌중과 호흡을 같이 하였다. 다음은, 박 작가가 자유롭게 들려준 고향땅 이야기인데, 와사등과 시민 여러분의 공동기록이다.



“저는 사랑보다 더 센 권력을 알지 못합니다”


고향 논산은 금강문화권을 중심으로 수천 년 동안 그 역사가 이어져왔지만 승리의 역사보다 패배의 역사가 더 많았습니다. 제가 있는 집필관 주변이 황산벌이에요. 황산벌은 계백장군이 전사하면서 백제가 망한 곳이자 후백제가 망한 곳이잖아요? 임진왜란 때에도 왜군 침략으로 해를 많이 입은 곳이죠. 조선 중기에는 기호학파 중심지로 회덕에는 송시열, 논산에는 김장생·윤증 등 사대부들이 지배했죠. 동학 때도 우금치 전투에 앞서 남북 접주들이 마지막 회의를 한 장소였고요. 고향 논산에는 그런 아픈 역사가 새겨져 있어요.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죽었겠어요. 밤마다 집필관 주변에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이런 생각이 들어요. ‘혹시 그분들이 저를 매개로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나’하는. 저는 그래도 살아 고향에 돌아왔잖습니까? 고향은 첫 마음이고 첫사랑이자 어머니이지요.

저는 연무읍에서 태어났고 강경중학교를 다녔습니다. 원래 강경은 원산항과 함께 조선의 2대 포구로 불렸으며 평양, 대구와 더불어 조선의 3대 시장으로 불리던 곳입니다. 하지만 저에게 강경은 장꾼들의 하얀 행렬, 목쉰 기적소리를 내며 달리던 검은 기차들, 줄지어 기차를 오르내리던 생선장수 아줌마들의 걸진 함지박, 장사꾼들의 왁자한 호객소리, 먼 곳에서 온 배들이 열 지어 정박한 채 차례로 짐을 부리는 풍경 등이 먼저 떠오르는 암팡지고 역동적인 기억들이지요. 

저는 강경읍에서 익산 남성고를 기차로 통학했습니다. 하지만 새벽밥 먹고 나와 역으로 안 가고 갈대밭에 가서 매일 하루 책을 2권씩 읽었습니다. 학교도 안 가고 여기 갈대밭에 들어와서 숱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강경은 제 문학의 고향입니다. 개발의 광풍에서 벗어나 오히려 시간이 정체되어 있어 더 매력적인 곳이기도 하지요. 개발의 광풍이 이곳을 덮쳤다면 저는 이곳을 사랑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이 문학의 본질입니다.

본질적으로 문학은 외롭고, 그늘지고, 결핍지고, 눈물 나고, 상처 받고, 억울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편에 서는 것입니다. 미워하고, 비난하는 것이 아닌, 결핍 가득한 세계를 사랑하는 것, 그래서 문학은 사랑입니다. 저는 사랑보다 더 센 권력을 알지 못합니다. 사랑만이 최고의 권력이고, 사랑만이 우리가 삶을 버티게 해주는 힘입니다. 

돌아보니 문학은 제 영혼의 방부제였던 것 같습니다. 문학, 목매달아 죽어도 좋은 나무지요. 제 마음 속에는 분명하게 훼손되지 않는 어떤 순정이 자리 잡고 있고 그것이 문학 순정주의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민하다는 것은 상처받기 쉬운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물이 나를 통과해서 지나가면 자국이 남지요. 그런 순정을 유지한 사람이 문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더욱 부모님이 그립습니다. 이처럼 많은 분들이 제 강연을 듣고 있는 모습을 부모님께서 보셨다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이제 저도 부모님의 나이를 훌쩍 넘었습니다. 여기 서서 이렇게 여러분을 보며 말하는 내내 가슴이 뻐근합니다. 그것이 여전히 제가 강경을 사랑하는 이유입니다. 늦은 시간까지 함께 해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강연을 마칩니다. 



- 이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