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2리 관통하여 올라가는 황산성 둘레길

놀뫼신문
2020-02-20

[논산의 비경 ‘황산성’ 가는 길]

관동2리 관통하여 올라가는 황산성 둘레길 


황산성은 계룡산 끝자락으로 전략적 요충지



백제 수도인 부여의 최후 보루성이 논산에 둘 있다. 하나는 노성산성이요, 하나는 연산의 황산성이다. 계백장군이 5천 결사대를 이끌고 신라 5만대군과 맞서다 장렬히 산화한 곳, 황산벌이다. 사람들이 황산벌은 익숙해도, 그 전투의 사령탑인 황산성의 존재를 잘 몰랐다. 

연산 사람인데도 모르는 이가 있었다. 황산성은 연산천 건너편 계룡산 끝자락에 숨어 있어서다. 연산시장에서 연산순대집을 끼고 철도 건널목 지나 관동교 건너면 흰돌로 된 관동리 이정표가 반겨준다. 관동리! 예전 화랑 관창이 애석하게 죽은  곳이라 하여 ‘관창골’이라고도 불렸다. 관동2리에는 가장골이 있다. 황산벌 전투에서 죽어나간 무수한 시체들을 가매장한 곳이어서 그런 이름이 붙은 게 아닌가 추정한다. 

황산성은 계룡산 거의 끝자락인데, 산을 거슬러 올라가면 송정리, 화악리, 도곡리이다. 송정리에도 무수한 시체가 쌓여서 그런 이름이 붙은 건 아닐까? 이러저런 추정이 설득력 가질 만큼 처절했던 전투가 황산벌전투이다. 

황산성 가는 길도 만만치 않다. 대개는 직진, 관동1리 동네를 관통하여서 산길을 오른다. 황산성 바로 밑의 주차장까지 차로 가면 10~15분 걸린다. 속도를 낼 수 없는 임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르는 길이 또 하나 있다. 좌회전, 관동2리길로 접어들면 나온다.


성안의 우물과 군청지의 연화문와당

800미터 길이의 무너진 황산성터(말과 사람 드나들던 서문터 흔적)


향교가는 길 관동2리 한복판


관동2리는 향교 가는 길이다. 요즘은 “정원일기”라는 전원카페가 생겨서 그 팻말을 따라가면 더 쉽다. 시골카페 이웃집이 관동2리 마을회관이다. 그리로 해서 50여호 옹기종기 사는 동네 한복판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막바지에 향교가 나온다. 향교 가려는 차는 향교 홍살문 아래 차장에서 내려야 한다. 주차장은 한국신약 연수원 바로 앞이다. 그 일대 산은 한국신약 한만우 회장의 선산이기도 하다. 매번 황산성 등반객을 동반해주는 관동2리 김태원 이장의 설명에 의하면, 한 회장은 마을회관 지을 때 5천만원 시사할 정도로 마을일에 협조적이라고 한다. 그 앞마당처럼 보이는 곳으로 진입하면 막힌 듯 보이는 곳에 샛길이 숨어 있다. 골짜기 건너 좌측에는 한회장 선산과 큼지막한 묘비가 보인다. 좀더 올라가면 아담한 집이 하나 나온다. 동화 속 빵으로 된 집처럼, 온통 나무와 서각으로 장식된 집이다. 연산리에는 서각수강생 모집 현수막이 나부끼는데, 서각을 하는 한존정 서예회장 집이란다. 

차로 조금더 밀고 올라가면 대연암이라는 암자다. 여기부터는 앞마당에 주차하고서 걸어가야 한다. 좁은 산길은 아니다. 길 따라 300미터쯤 올라가니 드디어 주차장이다. 오르는 길 좌측은 논이었다고 한다. 이 고지대에 벼를 심었다는 것은 하늘물도 내렸겠만, 일대가 습지대이어서란다. 동행하는 김 이장은 멧돼지가 목욕하다 간 자욱들을 손으로 가리킨다. 10여분 오르니 드디어 주차장이다. 관동1리 굽이쳐오는 임도로 해서 차 끌고 오는 시간이나 비까비까인 첩경(捷徑)이다. 예전 황산벌 전투를 지휘했던 황산성주는 이 길로 직행해서 오르내렸을 것이다.

주차장 입구에는 수도 시설이 돼 있다. 황산성복원회가 시행한 사업인데, 음료적합 판정이 붙어 있다. 지하수 모터를 작동시키는 걸 보니 전봇대가 이 고지에도 심겨져 있는 것이다. 백제시대 때도 그랬던 거 같다. 100여미터에 달하는 황산성 진입로에서 올려다보니 허물어진 성벽이 눈에 들어온다. 황산성 한복판은 큰 우물이다. 사람이 거주하는 데 물이 필수인데, 황산성채에는 정주 여건이 갖추어져 있었던 것 같다. 



황산성복원회와 둘레길, 자연학습장


황산성복원회가 결성된 때가 2년쯤 되었다. 연산면민들 스스로 일어난 민 주도의 모임이었다. 현재는 도기정 위원장과 23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그 동안 자비와 주민자치회비 3천만원을 들여서 황산성 둘레길을 조성하였다. 전체 800미터 중 2/3 정도를 야자매트로 깔았고 정자 하나도 지었다. 기존에 지어졌던 정자는 깃대봉쪽에 있었는데, 이로써 정자는 두 개가 되었다. 문은 서문과 동문 두 개만 발견되었는데, 문을 비롯한 성곽의 복원과 발굴 등에는 거액이 들어간다. 2년 전 대추축제에서 황산성복원회가 자체로 마련한 기금 1천만원을 시에 기탁하자, 의회에서는 김만중 시의원이, 시에서는 황명선 시장이 화답하였다. 충남도에서도 김형도 도의원이 애정을 기울여서, 총 2억의 예산이 배정되었다. 올해는 이밖에도 주민자치사업비 2~3천의 예산이 집행을 기다리고 있다. 황산성둘레길 나머지 300m를 정비하여 학생들도 큰 어려움없이 돌아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현재 황산성 관리와 둘레길 사업은 보존회에서도 주관하지만 주민자치회에서와 연대 진행중이다. 

백제시대, 금산의 탄현성이 무너지자 황산성은 백제결사군 최후의 보루가 되었다. 황산성 안에는 깃대봉 주변은 물론 도처에 기와조각이 널려 있다. 연화문와당인데, 이로 미루어보건대 황산성주는 고관대작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지금까지 황산성은 서울에 거주하면서 이곳에 자주 내려오는 이재준 역사연구가가 애정을 기울여왔고, 이러저런 추정도 현재로서는 그의 사견이다. 지난 대추축제때 이재준 작사 김가연 노래로 “아 황산벌”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황산성복원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제 황산성은 다방면에서 본격적인 연구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역사연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현재 황산성 우물가에는 도롱뇽알 투성이다. 이 동네에서 태어나 환갑을 맞은 김태원 이장은 방문객들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참 많다. 학생들이 올라오는 날이면 장화를 신고 들어가서 우물가를 정비한다. 뱀 같은 위험 동물도 살펴본다. 산토끼는 요즘은 전멸 상태다. 들고양이 개체수가 늘어나다보니 토끼 새끼들이 견뎌내지 못해서란다. 황산성에서 표정리와 어은리, 금강대 인근까지 이어지는 임도(林道)에 꺼병이(꿩새끼)도 간혹 포착된다. 이러저런 생태계의 보고 한복판이 황산성이다. 종합교육장이 되는 것이다. 주변의 연산홍 군락과 되짚어내려가는 임도도 식물학습장이 되지만, 동시에 이 지역 주민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서 관리해 주어야 하는 구간이기도 하다. 



계룡산 끝자락 황산성과 연산천


다시 동네로 내려오면 좌측으로 연산 향교가 눈길을 끈다. 춘계 추계 석전 대제때 아니면 방문객이 별로 없는 곳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관리동에 사람이 거주했다고 한다. 관리인이 거주하는 관동1리 성주도씨 종중 고택과 대비가 된 상황이다. 향교 뒤편으로 해서 황산성 진입도 가능하기는 한데, 사람 손길이 한참 가야 하는 미답지 상태이다. 

산 아래 관동리 마을사람들은 연산천을 내다보며 생활한다. 벌판에는 형채가 특이한 괴목이 있고, 동네 초입에 또 하나 미목이 있다. 쌀, 딸기가 주작물인 전형적인 논산, 농촌마을이다. 연산천 뚝방길 따라서 북으로는 작년에 처음으로 무궁화마을축제를 연 송정리다. 범골 끝자락에는 양지서당이 있고 아이들은 검도 수련중이다. 천연기념물 화악리 오계는 좀더 북쪽이다. 뚝방길 따라 남쪽으로는 고양리인데, 계룡산의 끄트머리이다. 그 연산천 건너편은 대추축제가 열리던 고수부지이고 농협공판장과 연산역이다. 

이렇게 행정구역은 갈리지만 이 모든 동네를 품어주는 엄마품은 황산성과 연산천이다. 예전에 이 연산천을 따라 배도 들어왔다고 하는데, 지금은 수량이 적어서인지 실감이 잘 안 난다. 황산성과 연산천, 그리고 황산벌 이야기, 그 속편이 기다려진다. 


- 이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