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문학작품 속 장소를 찾아서

놀뫼신문
2019-10-15

독서의 계절 「문학작품 속 장소를 찾아서」 

한국문학 정취가 묻어나는 감성 여행


독서와 문학의 계절을 맞아 소설, 시, 수필 등 다양한 장르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며, 소박한 풍광 속에 펼쳐지는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마음이 잔잔해지는 여행을 떠나보자. 각 지역마다 소개된 작가의 대표작을 읽고 간다면 더한층 풍요로운 여행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주)



무소유의 삶을 기억하다

『성북동 길상사』


[서울 성북구 선잠로5길]

법정 스님은 글을 통해 많은 독자에게 강한 울림을 선사한 분이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며 무소유를 강조했고, 《무소유》 《맑고 향기롭게》 《산방한담》 《버리고 떠나기》 등 저서 20여 권을 남겼다. 스님은 1932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1956년 효봉 스님의 제자로 출가했으며, 2010년 길상사에서 입적했다. 그의 맑고 향기로운 흔적이 성북동 길상사에 있다. 

길상사는 원래 건물 40여 채와 대지  2만 3140㎡로, 시가 1000억 원이 넘는 규모의 대원각이라는 요정이었는데 법정 스님이 쓴 《무소유》를 읽고 감명 받은 김영한의 시주로 탄생한 절집이다. 창건 역사는 20년 남짓하지만, 천년 고찰 못지않게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법정 스님의 흔적은 길상사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진영각에 있다. 전각에는 스님의 영정과 친필 원고, 유언장 등이 전시된다. 법정 스님은 “의식을 행하지 말고, 관과 수의를 준비하지 말며, 승복을 입은 채로 다비하라”고 유언했다. 

김영한과 시인 백석의 이야기 역시 길상사에서 빼놓을 수 없다.

김영한은 기생 교육기관이자 조합인 권번에 들어 수업을 받고 진향이라는 이름으로 입문했다. 1950년대 청암장이라는 별장을 사들여 운영하기 시작한 대원각은 군사독재 시절 삼청각, 청운각과 함께 3대 요정으로 이름을 떨쳤다. 김영한은 대원각을 시주할 때 “그까짓 1000억 원은 백석의 시 한 줄만 못하다”며 한 치도 미련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서 백석은 그녀가 사랑한 시인 백석이다. 백석은 김영한에게 자야라는 아호를 지어줄 정도로 아끼고 사랑했다. 하지만 사랑은 결실을 맺지 못하고 백석은 만주로 떠났다. 이후 서로 생사를 알지 못한 채 백석은 1996년 북한에서, 김영한은 1999년 길상사 길상헌에서 눈감았다.

길상사와 함께 문학 이야기를 나눌 여행지가 주변에 많다. 《님의 침묵》을 쓴 만해 한용운이 거주한 심우장,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로 잘 알려진 최순우 가옥, 《문장 강화》를 쓴 이태준 선생의 집도 가깝다. 상허 이태준 가옥은 ‘수연산방’으로 바뀌어 향긋한 차 한잔 나누기 좋다.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10월의 어느 멋진 날, 성북동을 거닐며 차분하게 문학 기행을 떠나보자.

*문의 길상사 02)3672-5945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02)2241-2632

*당일여행 길상사→우리옛돌박물관→상허이태준가옥(수연산방)→서울 성북동 최순우 가옥→성북동이종석별장→만해 한용운 심우장→삼청각→한양도성(숙정문-말바위전망대)

*1박2일여행 |첫째날| 우리옛돌박물관→삼청각→만해 한용운 심우장→북정마을→길상사 |둘째날| 한국가구박물관→상허이태준가옥(수연산방)→서울 성북동 최순우 가옥→서울 선잠단지, 성북선잠박물관→성북동이종석별장→한양도성(숙정문-말바위전망대)

*주변볼거리 간송미술관, 삼청각, 성북구립미술관, 북악스카이웨이, 성락원



전철 타고 떠나는 이야기 마을

『춘천 김유정문학촌』


[강원 춘천시 신동면 김유정로]

소설가는 가도 이야기는 남았다. ‘일제강점기 한국 단편소설의 축복’으로 평가되는 김유정(1908~1937). 만석꾼 집에서 태어나 남부러울 것 없이 살다가 서른 해를 채 살지 못하고, 가난과 폐결핵에 시달리다 떠난 그가 남긴 단편소설 30여 편은 살아 있는 우리말의 보물 창고다. 점순이와 머슴, 들병이처럼 어딘가 부족하고 못난 인생이 펼치는 이야기가 지금도 독자를 울리고 웃긴다.

어려서 경성으로 간 김유정은 휘문고보를 졸업하고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했으나, 당대 명창이자 명기 박녹주를 쫓아다니느라 결석이 잦아 제적된다. 낙향해 야학을 열었다가 다시 상경, 〈산골 나그네〉로 등단하면서 소설가로 이름을 알린다. 이 과정에서 집안이 점점 기울고, 가난과 병마에 시달리던 김유정은 “나에게는 돈이 필요하다… 그 돈이 되면 우선 닭을 한 삼십 마리 고아 먹겠다… 그래야 내가 다시 살 것이다”라는 마지막 편지를 남기고 스물아홉 한창 나이에 세상을 버린다. 김유정의 삶과 작품 이야기는 생가 옆 김유정기념전시관에서 자세히 볼 수 있다.

수도권 전철 경춘선 김유정역에서 도보로 10분이면 닿는 김유정문학촌은 《봄.봄》 《동백꽃》을 쓴 소설가 김유정의 고향에 조성된 문학 마을이다. 김유정생가를 중심으로 그의 삶과 문학을 살펴볼 수 있는 김유정기념전시관, 다양한 멀티미디어 시설을 갖춘 김유정이야기집 등이 자리 잡았다. 

네모난 하늘이 보이는 생가 중정 툇마루에서 문화해설사가 하루 일곱 번(11~2월은 여섯 번)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준다. 실제로 김유정의 많은 작품이 이곳 실레마을을 배경으로 쓰였다. 덕분에 김유정문학촌 곳곳에는 ‘점순이가 나를 꼬시던 동백숲길’ ‘복만이가 계약서 쓰고 아내 팔아먹던 고갯길’ ‘근식이가 자기 집 솥 훔치던 한숨길’ 등 이름만 들어도 재미난 실레이야기길 열여섯 마당이 펼쳐진다.

김유정문학촌 인근에는 또 다른 볼거리가 많다. 경춘선 신남역이 이름을 바꾼 옛 김유정역은 빈티지 느낌 가득한 SNS 명소다. 푸른 강물 위를 걷는 소양강스카이워크, 춘천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구봉산전망대카페거리도 놓치기 아깝다. 

아이와 함께라면 춘천꿈자람어린이공원을 빼먹지 말 것. 실내와 실외로 구성된 키즈 파크인데, 춘천시가 운영해 가격까지 착하다.

*문의 김유정문학촌 033)261-4650

*당일여행 옛 김유정역→김유정문학촌→소양강스카이워크→춘천꿈자람어린이공원→구봉산전망대카페거리

*1박2일여행 |첫째날| 옛 김유정역→김유정문학촌→소양강스카이워크→춘천꿈자람어린이공원→구봉산전망대카페거리 |둘째날| 춘천막국수체험박물관→물레길

*주변볼거리 책과인쇄박물관, 춘천인형극장, 공지천유원지, 소양강댐, 청평사 등



우리가 떠나온 옛 고향 찾아가는 길

『옥천 정지용문학관』


[충북 옥천군 옥천읍 향수길]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중년의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불러봤을 노래 ‘향수’는 정지용의 시에 곡을 붙였다. 이 노래 덕분에 정지용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민 시인’ 반열에 올라섰고, 잊히고 사라진 고향 풍경이 우리 마음속에 다시 떠오르는 계기가 됐다. 

옥천에 있는 정지용생가와 문학관으로 가는 길은 마치 떠나온 고향을 찾아가는 느낌이다. 옥천 구읍의 실개천 앞에 정지용생가와 문학관이 자리한다. 

단층 건물인 정지용문학관은 크게 전시실과 문학 체험 공간으로 나뉜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다소곳이 앉은 정지용 밀랍인형이 보인다. 정지용과 기념 촬영할 수 있는 포토 존이다. 전시실로 들어서니 붓글씨로 〈향수〉를 적은 액자가 눈에 띈다. 한 구절 한 구절 읽어볼수록 고향의 전경이 떠오른다. 마치 내 고향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정지용 시인과 그의 시대’ 안내판은 정지용의 생애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정지용은 1902년에 태어나 열두 살에 결혼했고, 휘문고등보통학교와 일본 도시샤(同志社)대학을 졸업했다. 1926년 《학조》 창간호에 〈카페·프란스〉를 발표하며 등단했고, 〈향수〉 〈고향〉 등 주옥같은 작품을 내놓으며 조선 문단의 대표 시인으로 떠올랐다.

정지용은 빼어난 후배 시인을 발굴한 《문장》 심사 위원으로도 유명하다. 청록파(조지훈, 박목월, 박두진)와 윤동주, 이상을 추천해 등단시켰다.

정지용의 시를 테마로 꾸민 장계국민관광지도 빼놓을 수 없다. 정지용의 시와 수려한 강변 풍광이 어우러져 낙후된 관광지가 독특한 명소가 됐다. 그밖에 금강이 유장하게 흐르는 곳에서 만나는 기암절벽 부소담악(赴召潭岳), 옥천 일대 조망이 일품인 용암사도 둘러보자.

*문의 옥천군청 문화관광과 043)730-3114

*당일여행 정지용생가→정지용문학관→장계국민관광지→부소담악→용암사

*1박2일여행 |첫째날| 정지용생가→정지용문학관→장계국민관광지→부소담악→용암사→장령산자연휴양림 |둘째날| 금강유원지→둔주봉

*주변볼거리 옥천 육영수 생가, 이원양조장



눈물이 나면 가을 순천에 가라

『선암사, 송광사 불일암, 순천만습지』


[전남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길(선암사) / 송광면 외솔길(송광사 불일암) / 순천시 순천만길(순천만습지)]

순천은 문학 여행지로 손꼽는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정호승의 시 〈선암사〉 첫 행이다. 1999년에 나온 시집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에 수록됐다. 

선암사는 정호승의 시가 아니라도 가을에 붐비는 사찰이다. 시인이 선암사에 가라 권한 장소는 따로 있다. 순천선암사측간(전남문화재자료 214호), 오래된 재래식 화장실(해우소)이다. 선암사는 돌다리가 문화재이듯 해우소 역시 문화재다. 앞면 6칸, 옆면 4칸 맞배지붕 건물로 평면은 정(丁) 자 모양이다. 정호승 시인은 이곳에서 “실컷 울어라”라고 했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줄 거라 했다. 바닥이 깊은 해우소는 으슥하다기보다 그윽하다. 선암사에 현대식 화장실이 여러 곳 있지만, 해우소에서 일을 보고 나올 때 마음의 찌꺼기도 사라진 듯하다.

송광사 불일암도 문학의 향기가 짙다. 법정 스님이 1975년부터 1992년까지 기거하며 글을 쓴 곳이다. 《무소유》가 1976년 작품이다. 편백과 대나무 숲을 지나 다다르는데, 법정 스님의 유해가 묻힌 불일암 후박나무 아래서 뉘인들 묵언하지 않을 수 있을까. 

순천만습지는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 속 ‘무진’이다. 일상과 이상, 현실과 동경의 경계가 어우러진 풍경이다. 가까이 순천문학관이 있어 그의 문학 세계를 살펴보기 좋다.

순천만습지에서 와온해변이 멀지 않다. 박완서 작가가 봄꽃보다 아름답다 한 개펄이 있다. 용산전망대 못지않은 일몰 또한 자랑이다. 선암사 초입의 순천전통야생차체험관이나 순천역 근처 조곡동 철도문화마을도 여행길에 들러볼 만하다.

*문의 선암사 061)754-5247 / 송광사 061)755-0107~9 / 순천만습지 061)749-6052

*당일여행 |문학여행| 선암사→순천전통야생차체험관→송광사 불일암→순천문학관 |촬영여행| 조곡동 철도문화마을→순천만습지→순천문학관→와온해변

*1박2일여행 |첫째날| 송광사 불일암→송광사→굴목재→선암사→순천전통야생차체험관 |둘째날| 조곡동 철도문화마을→순천만습지→순천문학관→와온해변

*주변볼거리 순천드라마촬영장, 낙안읍성, 아랫장, 순천시기독교역사박물관, 순천왜성



가난 속 피워낸 따뜻한 동화 세상

『안동 권정생동화나라』


[경북 안동시 일직면 성남길]

안동 권정생동화나라는 낮은 마음가짐으로 마주하는 공간이다. 《강아지 똥》 《몽실 언니》 등 주옥같은 작품으로 아이들이 평화로운 세상을 꿈꾼 고 권정생 선생의 문학과 삶이 담겨 있다.

권정생동화나라는 선생이 생전에 머무른 일직면의 한 폐교를 문학관으로 꾸몄다. 선생의 유품과 작품, 가난 속에서도 따뜻한 글을 써 내려간 삶의 흔적이 있다. 2007년 세상을 떠난 권정생 선생은 ‘좋은 동화 한 편은 백 번 설교보다 낫다’는 평소 신념을 이곳에 고스란히 남겼다. 

1937년 일본 도쿄에서 5남 2녀 중 여섯째로 태어난 선생은 청소부로 일한 아버지가 쓰레기 더미에서 가져온 헌책을 읽으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해방 이듬해 귀국해서 한국전쟁을 겪었고, 나무 장사와 고구마 장사 등을 하며 어려운 생활을 꾸려갔다. 청년 시절 결핵을 앓았고, 한쪽 콩팥과 방광을 들어내기도 한 선생에게 가난, 병마와 함께한 세월은 글을 쓰는 자양분이었다.

조탑마을 일직교회의 종지기로 문간방에 머무른 선생은 죽기 전에 아이들을 위해 좋은 책 한 권 남기려 했다. 《강아지 똥》은 그렇게 탄생한 작품으로, 1969년 기독교아동문학상에 당선됐다. 전시실 곳곳에는 선생의 책이 설명과 함께 전시된다. 전쟁의 참상 속에 아이들의 삶과 인간미를 그린 《몽실 언니》, 산불 속 까투리의 모성애를 담은 《엄마 까투리》 외에 《무명 저고리와 엄마》 《황소 아저씨》 등 유작 수십 편을 만날 수 있다.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초등학교를 졸업한 게 전부지만, 선생은 불쌍한 어린이에게 애정을 아끼지 않았다. 전시실에 보관된 유언장에는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는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는 어린이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적혀 있다.

문향(文香)이 깃든 안동 나들이 때는 지난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서원’ 9곳 가운데 병산서원과 도산서원을 둘러본다. 

낙동강 변의 절경을 간직한 서원 외에도 고산정, 농암종택 등이 가을 여행의 운치를 더한다.

*문의 권정생동화나라 054)858-0808

*당일여행 권정생동화나라→조탑마을→병산서원→도산서원

*1박2일여행 |첫째날| 권정생동화나라→조탑마을→병산서원→하회마을 |둘째날| 도산서원→고산정→농암종택→안동호반

*주변볼거리 이육사문학관, 월영교, 안동군자마을



여재민 기자

자료제공 한국관광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