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야행에서 보는 박용래의 시와 해설

놀뫼신문
2020-11-24


다음은, 2020강경문화재야행 3일차 프로그램 시낭송 콘서트 <시를 통해 만나는 강경>에 나오는 박용래 시인의 시와 해설이다. 



시를 통해 만나는 강경

- 정순진 전대전대문예창작과 교수


박용래 시인은 강경이 낳은 한국 대표 시인으로 시와 술과 눈물로 한생을 수놓은 분이죠. 

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강경을 박용래 시인의 고향으로 기억하고, 시인의 발자취를 좇아 강경을 다녀가곤 합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박용래 시인에 대한 평은 ‘앞에도 없었고 뒤에도 오지 않을 하나의 정한의 시인’입니다. 


황산메기


밀물에

슬리고


썰물에

뜨는


하염없는 갯벌

살더라, 살더라

사알짝 흙에 덮여


목이 메는 白江下流

노을 밴 黃山메기

애꾸눈이 메기는 살더라,

살더라.


황산메기는 1978년 문학과 지성에 발표된 곡 5편 중에 1편입니다. 시인이 1980년에 돌아가셨으니까 그 이태쯤 전에 고향을 노래한 시들이죠. 그 5편은 ‘여우비’, ‘마을’, ‘대추랑’, ‘황산메기’, ‘어스름’인데 ‘곡’이라는 제목이 알려주는 것처럼 시인의 마음 속에 흐르는 가락을 생생한 구어로 짧은 시행을 민활하게 사용하여 부른 노래입니다. 

‘황산 메기’는 옥녀봉 발부리에 있는 부곡강의 당대 상황을 노래한 시입니다. 박용래 시인은 주로 스러지는 것, 어스름한 것, 설운(섧은) 것을 노래하였는데 칠산 앞바다의 조기와 흑산도 홍어로 만선을 이룬 배들이 금강에 즐비하던 시절, 그 흥성한 생기가 강경을 전국 3대 시장에 하나로 만들었던 시절을 보고 자란 시인에게 당대의 부곡강은 섧디 섧은 감회를 불러일으켰을 것입니다. 고향에 남아 있는 옛것은 산업시대에 공해로 병들고 생태에 변화를 일으켜 눈먼 애꾸눈이 되었는데, 밀물에 슬리고, 썰물에 뜨고 목이 메고 노을 밴 채 살더라는 것이죠. ‘더라’는 화자가 과거에 직접 경험하여 알게 된 사실을 그대로 옮길 때 사용하는 종결어미인데, 이 짧은 시에서 4번이나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시는 ‘ㅅ’의 변주곡이라고 할 만큼 ‘ㅅ’으로 시작하는 낱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요, ‘ㅅ’은 잇소리이고 만나서 스쳐서 소리를 내는 마찰음 가운데 가장 여린 소리입니다. 슬리고, 살더라 ‘사알짝 흙에 덮여’라는 구절을 읽자면, “배추씨처럼 살짝 흙에 덮여 살고 싶다”고 했던 시인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이 시를 다시 읽자, 불구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황산 메기를 사랑하는, 영화가 스러졌음에도 불구하고 강경을 사랑하는 시인이 떠오릅니다. 소설가 이문구는 불구가 된 노을 밴 메기가 초로에 접어든 시인의 뒷모습으로 여겨져 가슴이 뭉클했다 말하기도 했지요. 사람, 사랑, 살다 모두 ‘ㅅ’으로 시작하는 낱말이네요. 스러져가는 생명을 사랑한 사람의 서러움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시입니다.


나태주 시 ‘강경’ 

이정우 충남문인협회장의 해설


우리 한국 시단의 국민 시인으로 불러지는 나태주 시인께서 강경을 노래하셨습니다. 부제는 ‘박용래 시인을 추억하며’라는 “강경”이라는 시입니다. 


강경 江景

- 박용래 시인을 추억하며


안개비 뿌옇게 흐려진 창가에 붙어서서

종일 두고 손가락 끝으로 쓰는 이름

진한 잉크빛 번진 서양 제비꽃, 팬지

입술이 갈라진, 가슴이 너울대는.


이 시는 제목은 ‘강경’이지만 시 안에는 강경을 상징하는 단어 하나 들어 있지 않습니다. 나태주 시인이 생각할 때 강경 하면 박용래 시인을 떠올린 것입니다. 그래서 제목은 ‘강경’이라고 했지만 이 시의 모든 시상은 박용래 시인을 노래합니다. 시 속에 있는 ‘안개비 뿌옇게 흐려진 창가’, ‘진한 잉크빛 번진’ ‘가슴이 너울대는’ 등 이런 모든 부사와 형용사를 가지고 시를 쓰는 과정에서의 이미지는 철저하게 박용래 시인을 대입시키고 있는 것이죠. 

나태주 시인은 이 시를 통해 “강경에서 박용래 시인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말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그런 말도 있었습니다. “북에는 소월이 있었거니 남에는 박목월이가 날만 하다.” 이는 정재용 시인이 박목월 시인을 문장지에 추천하면서 이야기했던 소월과 목월 이야기입니다. “박용래 시인을 읽지 않고는 한국어로 된 서정시를 이야기할 수 없다.” 박용래 시인은 서정시에 극치, 아주 모범적인 서정시를 쓴 우리나라 대표 시인이십니다. 그런 시인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이 강경이라는 시인을 쓰셨습니다. 

그런데 박용래 시인은 ‘울보시인’으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어느 날 신경림 시인도 회고록에서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눈이 펑펑 내리던 어느 70년대 날에 글을 처음 보았는데 술에 취해서 울고 있었던 그 모습이 지금도 생각난다.” 이렇게 회고하셨습니다. 늘 술만 취하면 어느 자리던 누구를 만나던 자주 우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가 젓갈시장 내 골목에서 욕쟁이 아주머니 집에서 욕을 들으면서, 그것을 안주 삼아 늘 막걸리를 마셨다고 해요. 그래서 후배 문인들이 박용래 시인이 그리울 때마다 그 주막에 나가서 같은 농도의 욕을 벗 삼아 박용래 시인을 떠올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금은 그 주막조차도 사라지고 없지만 여전히 박용래 시인의 시와 그의 문학적 업적은 고스란히 남아서 오늘 강경을 문학의 도시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강경에 가면

- 시인 권선옥


쑥부쟁이 처럼 내 마음이 어수선할 때 나는 강경, 강경으로 간다.

옥녀봉에서 바라보면 언제나 유유히 흐르던 금강

나도 그 강을 따라 바다로 가고 싶었지.

거리마다 골목마다 어디 한 군데인들

내 눈길이 머물지 않은 곳이 있으며 마음 두지 않는 곳이 있으랴.


내 마음의 고향, 강경

경치가 아름다워서 강경, 사람들이 다정하고

군데군데 오래된 장맛 같은 문화의 향기가 서린 강경을 생각만 해도

마음에 온기가 돌고 사람들과 세상이 아름다워진다. 


권선옥 시인과 박용래 시인은 강경상고 선후배 사이입니다. 1960년대 말 강경상고 2학년 시절에 박용래 시인이 교지 ‘팽나무’에서 ‘삼동’이라는 시를 실었답니다. 


삼동(三冬)

- 박용래(강경상고 20기 졸업생)


어두컴컴한 부엌에서 새어나는 불빛이여 늦은 저녁

상(床) 치우는 달그락 소리여 비우고 씻는 그릇 소리여

어디선가 가랑잎 지는 소리여 밤이여 섧은 잔(盞)이여

어두컴컴한 부엌에서 새어나는 아슴한 불빛이여.


그 말미에 시 20기 졸업생이라고 써진 것을 보고, “나도 선배님 같은 시인이 되어야겠다.”라고 했다죠. 그 후 시인이 됐고, 박용래 시인의 사랑을 받았고, 상처 입은 사람을 어루만지고, 희망을 주는 시를 쓰고 싶다는 소망으로 지금까지 시작활동을 하고 계시죠.



[채록] 손채연(출처: https://youtu.be/7mLGwwzNCQA )

[편집] 이진영(독자의 이해 돕고자 유튜브에 없는 부분들 삽입 보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