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박용래 시인에게 바치는 나의 ‘시노래’

놀뫼신문
2020-11-24


내가 박용래 시인을 처음 만난 것은 1972년 가을에 대전에 있는 서양화가 권영우선생님의 화실에서였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그림을 처음 배우기 시작한 시절이었지요.

그 당시 서양화가 권영우 선생님은 서울에서 홍익대 미대를 졸업하고 서대전, 지금 세이백화점 맞은편에 처음 화실을 열었습니다. 박용래 선생님은 늘 문인들, 음악인들, 화가들을 좋아하셨는데 대전에서 활동하던 화가들 중 특별히 권선생님을 아끼셨어요. 권영우 선생님 또한 박용래 시인 못지않게 맑고 순수한 영혼을 지녔고, 그런 작품활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박용래시인의 집이 화실과 아주 가까운 서대전사거리라서 자주 들르셨기 때문에, 저도 가까이 뵐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시인의 딸도 권영우 선생님의 지도를 받게 되었지요. 

그 뒤로 선생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8년 동안 인연은 계속되었고, 저는 슬픔이라기보다는 고통에 가까운 시인의 창작활동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시에는 문외한이었던 저도 어느새 뒷주머니에 반으로 접힌 시집을 꽂고 다니게 되었구요. 

시인이 돌아가시고 세 해 뒤 논산에서 살게 되면서 시인의 발자취를 더듬게 되었습니다. 강경 포구 억새밭에서 ‘황산메기’를 읽다가 나도 모르게 곡을 붙이게 된 것이 시인을 노래하게 된 처음이었습니다. 그 뒤로 선생님의 시 중에서 정말로 좋아한 시 몇 편에 곡을 붙이게 되었지요. 누구에게 들려줄 만한 음악적 소양이나 솜씨를 가진 것도 아니었구요..... 그냥 기타 가락에 얹어 흥얼거리며 혼자서 시인을 추억하는 저만의 ‘박용래 시읽기’ 작업이었습니다.

미술을 전공한 저는 논산대건고등학교 미술교사로 부임하게 되었고, 정말로 우연한 계기로 아이들과 함께 중창단을 만들고 지도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시절 크게 유행하던 통기타 열풍에 휩쓸려 기타를 배우게 되었는데, 그 때 배웠던 기타 솜씨가 기본이 되어 지금까지 아이들과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살게 되었지요.

2000년 박용래 선생님 20주기 기념 문인들의 모임이 논산에서 열렸을 때 아이들과 함께 ‘황산메기’와 ‘엉겅퀴’를 부른 것을 처음으로 2~3년에 한번씩 열리는 문화원행사나 시낭송회에서 용감하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2020년 박용래 아카이브 전람회가 대전에서 열렸습니다. 박용래 선생님 딸인 화가 박연의 청으로 아카이브전 구석에 제 악보를 전시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께 말로 다하지 못할 영감을 받고서 살아가는 은혜를 조금이나마 보답하게 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박용래 시인은 논산의 시인이십니다. 영원한 논산사람이구요. 논산의 들판과 풀잎들과 흙내음, 논산사람의 사랑과 서정이 그대로 시인의 시가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논산사람은 박용래 시인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근현대 시인들 중에 박용래 시인이 차지하고 있는 문학적 위치와 의미는 제가 무어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시와 삶으로 보여준 시인의 향기를 수많은 문인들과 예술가들이 기리고 있는데, 오히려 논산 사는 사람들은 정작 시인과 시를 잘 모르게 된 현실이 안타깝고 슬픕니다. 

선생님의 시를 노래할 목청은 아니지만, 논산의 언덕과 들길을 걷다가 선생님을 그리워하며 혼자서 나지막이 부르는 제 노래 소리가 선생님의 시와 삶의 향기를 조금은 이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가끔 듭니다. 그럴 때마다 기타를 잡습니다. 


- 신현태(대건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