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아리랑 제작 발표회] 3천 년의 발자취를 녹여낸 ‘논산아리랑’ 서막을 열다

놀뫼신문
2024-06-11

제작발표회, 600여 명 시민들과 함께 성황리에 펼쳐져


논산시와 논산시의회가 공동 주최한 ‘논산아리랑’ 제작발표회가 6월 10일(월) 오후 4시 논산아트센터 대공연장에서 백성현 논산시장과 서원 논산시의회 의장을 비롯해 600여 명 이상의 시민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개최됐다. 

김홍신 작가의 노랫말에 박세환 작곡가가 곡을 입히고, 바리톤 정경과 지현아 명창의 노래로 완성된 ‘논산아리랑’은 지난 6월 6일 세계적인 워너뮤직을 통해 정식 앨범으로 발매되면서 '논산아리랑'의 위상이 세계적 반열에 올랐다. 


황산벌 들녘에 태평성대를 구현하는 ‘논산아리랑’ 


'논산아리랑' 제작발표회 소식을 접한 많은 시민들이 공연 시작 전부터 대공연장 관람석을 모두 채워, 옆 소공연장까지 사용하게 되면서 유튜브 라이브중계가 한몫했다. 

4시가 되자, 가온병창단의 식전공연이 시작되었다. 양왕열의 드럼과 박세환의 피아노에 맞춰 이평화, 강다은, 남궁민, 이예린의 가온병창단이 태평가, 꽃타령, 옹헤야, 범내려온다 등 4곡으로 공연장의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논산아리랑’의 제작․발표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자치단체에서 ‘축하’보다는 ‘부러움’에서 제작과정을 묻는 전화가 본지로 빗발쳤다. 

그리고 김태흠 충남도지사와 김지철 충남교육감, 황명선, 조승래 국회의원은 자리를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논산아리랑’ 탄생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김태흠 도지사는 “충청 제일의 양반도시 논산에 없었던 아리랑의 제작 소식이 무척 반갑게 느껴진다”며, “은진미륵과 돈암서원, 탑정호와 대둔산 등 논산만의 특색이 담긴 ‘논산아리랑’이 11만 논산시민을 하나로 묶어주고, 지역을 대표하는 노래로 많은 사랑 받기 바란다”는 축전을 보냈다. 

관객 인사를 위해 뜨거운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무대에 오른 김홍신 작가, 박세환 작곡가, 정경 바리톤, 지현아 명창은 “시민들의 열렬한 환호에 감사하다”며, “논산아리랑이 논산 및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노래로 성장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피력했다.

특히 김홍신 작가는 “앞으로 논산의 모든 행사에서 우리의 애국가 다음으로 이 ‘논산아리랑’이 불려져 우리의 가슴속에 새겨지도록 노래가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축사에 나선 백성현 논산시장은 “우리의 ‘논산아리랑’이 전국은 물론 세계를 넘나들면서 최고의 가치 있는 논산으로 거듭 태어날 것을 저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며, “10년 20년이 아니라 앞으로 4~5년 후에는 지금과 전혀 다른 논산이 여러분 앞에 펼쳐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서원 논산시의회 의장은 “논산아리랑이 탄생하기까지 많은 분들이 애써주셨는데, 함께한 의원님들을 소개 안 할 수 없다”며 김남충, 서승필, 민병춘 의원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서원 의장은 “시민 여러분들께서 이 곡을 계속 불러주시고 함께해 주시면 논산아리랑이 논산을 넘어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논산을 알리는데 쓰이게 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시민들 모두가 하나가 되어 “아리랑 아리랑, 논산아리랑~”


이번 제작발표회에 참여한 Der Musiker 오케스트라(지휘 김현실)의 세리머니 곡에 이어 정경 바리톤과 지현아 명창의 ‘논산아리랑’이 울려 퍼졌다. 

노랫말처럼 탑정호 물보라 무지개가 금강물결 춤사위를 이루는 듯 했다. 시민들 모두 하나가 되어 “아리랑 아리랑 논산아리랑~”을 목이 터져라 외쳤다. 논산을 하나로 쩜매주는 ‘논산아리랑’이 지금 우리 가슴속 깊은 곳으로 다가서고 있다. (유튜브채널 ‘얼쑤논산’ https://www.youtube.com/live/urTqur8XAII?si=NCzH7aHjYDn76BRo)


3천 년의 발자취를 녹여낸 ‘논산아리랑’


3천년 유구한 역사와 논산의 비경(祕境)은 주마간산으로는 여간해서 그 진면목을 볼 수 없다. 그런데 이번에 ‘논산아리랑’이라는 대서사시에 3천 년의 발자취를 녹여낸 김홍신 작가와 박세환 작곡가, 정경 바리톤, 지현아 명창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본지가 지난해부터 1년 이상의 제작 기간을 거쳐 기획한 ‘논산아리랑’은 기원전 마한시대부터 백제, 고려, 조선, 근대에 이르기까지 3천‘년의 발자취를 더듬어 만들어진 것이다. 이에 그 역사의 궤적을 쫓아본다. 


[고대] 3천년의 수수께끼, 국보 제141호 정문경 

논산의 기원전 유적 중 가장 돋보이는 것은 연무대에서 1960년대 출토된 국보 제141호 ‘정문경’과 제146호 ‘청동방울 일괄’이다. 특히 국보제 141호 ‘정문경’은 국보 중 국보로 꼽히는 보물이다. 

국보 제141호인 ‘정문경’은 논산훈련소에서 참호를 파던 훈련병에 의해 발견됐다. 마한시대 제작된 지름 21.2㎝, 두께 2㎝ 크기의 청동 원형거울인 ‘정문경’의 뒷면에는 현재의 나노 기술로도 힘든 0.3㎜ 간격의 가는 선 13,000여 개와 천여 개의 동심원이 기하학적으로 새겨져 있다. 3천 년의 수수께끼인 국내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다. 

‘정문경’은 1971년 12월 21일 국보 제141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국보 제146호인 ‘청동방울 일괄’은 리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었다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백제] 황산벌 계백장군과 연무에서 눈을 감은 견훤

백제는 기원전 부여족 계통인 온조 집단에 의해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건국되었다. 전성기에는 북으로 황해도에서부터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일대까지 영역으로 하였던 백제는 5천 결사대의 계백장군이 황산벌의 치열한 전투에서 나당연합군에 패하면서 660년 멸망하였다.

백제와 신라가 최후의 일전을 벌였던 황산벌에서 멀지 않은 곳에 탑정호를 내려다보며 계백장군의 묘소가 있으며, 백제군사박물관도 함께 있다. 

후백제를 건립하고 백제의 부흥을 도모했던 견훤은 아들 신검에게 쫓겨나 왕건에게 투항한 후, 지금의 연산면 천호산 일대에서 아들 신검과 숙명의 일전을 벌인다. 본인이 건립했던 후백제를 본인의 손으로 멸망시킨 견훤은 고향 상주와 후백제에는 돌아가지 못하고 “금산사를 바라볼 수 있는 곳에 묻어 달라”는 유언과 함께 눈을 감는다. 그래서 견훤의 무덤이 연무읍 금곡리에 있다.


[고려] 3대 사찰 개태사, 관촉사, 쌍계사

고려 왕건은 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하고 최후 전투의 배수진을 쳤던 곳을 ‘천호산’이라 명명하고 그곳에 개태사를 창건했다. 그래서 태조 왕건의 영정을 모시는 진전이 있었다. 개태사는 고려 말기 왜구의 침입으로 방화된 후 조선시대에는 폐사된 채 방치되어 있다가 1934년 현재의 자리로 이전되어 개축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개태사의 본 터는 현 위치에서 북쪽으로 약 300m 떨어진 곳에 있다.

국보 제323호 은진미륵이 있는 관촉사와 연리근이 있는 쌍계사는 300년의 시차를 두며 논산을 대표하는 고려시대 사찰이다. 

관촉사는 968년(광종 19)에 혜명이 불사를 짓기 시작하여 1006년에 완공하였다. 관촉사 경내에는 국보로 지정된 은진미륵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석조 미륵보살입상이 18m의 높이에서 인자한 미소를 띠우며 굽어보고 있다.

쌍계사는 고려 충숙왕 때의 명필 이암이 발원하여 창건하였으나, 고려때 건물은 모두 불에 타고 현 건물들은 조선 영조 때에 중수한 것이다. 화려하지도 않지만 소박한 쌍계사에는 보물 제408호로 지정된 대웅전이 있으며 두 나무의 뿌리가 하나로 동화된 연리근이 있다. 두 남녀의 백년해로 전설이 전해진다.


[조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돈암서원

조선시대의 문화유적으로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돈암서원을 비롯하여, 숙종 때 건립된 조선시대 상류 양반가정의 표본 명재고택이 있다. 또한 윤황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한 노강서원과 백일헌 종택, 종학당, 조선 영조때 건립된 강경 미내다리 등이 있다.

특히 돈암서원은 2019년 7월 6일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극되었으며, 사계 김장생 선생의 학문적 업적을 계승하고자 1634년, 현 장소에서 1.7㎞ 떨어진 곳에 건립되었다.

건립 후 1854년과 1874년 두 차례의 큰 홍수로 인해 1880년 현 장소로 임시 이전하였다. 그러나 돈암서원 기존부지로 일제의 호남선이 통과되어 돈암서원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자, 1925년 돈암서원 원정비를 이전하고 1971년 응도당까지 이전하여 현재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이와 같이 돈암서원은 1871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과 홍수로 인한 자연재해 그리고 일제의 호남선 건설 등의 악재를 견디면서도 세계문화유산 등극이라는 쾌거를 만들어 냈다.

노성면 호암리에는 조선시대 명종때 평안도병마절도사를 지낸 김수문 장군과 그의 부친 김임 묘소, 김수문 신도비 귀부가 있다. 김수문 장군은 명종 10년 을묘왜변 당시 제주목사로 재직하고 있었다. 당시 왜군들은 대규모 군대를 조직하고 한반도 침입에 앞서 제주도에 상륙하여 조선군의 상황을 점검하고자 하였다. 이때 김수문 장군은 전광석화와 같은 기습작전으로 적장의 머리를 베는 등 혁혁한 공을 세워 조정에서는 그를 평안도병마절도사로 보냈다. 김수문 장군은 그곳에서도 호인의 침입을 격퇴하고 북변 방어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근대] 강경 ‘근대역사문화거리’와 연무 ‘선샤인랜드’

강경읍 북옥리에 강경산이 있는데 이 산 정상을 옥녀봉이라고 부른다. 옥녀봉 아래로 흐르는 금강은 아주 맑고, 산은 숲으로 우거져 있으며 사방으로 끝없이 펼쳐진 들은 최고의 경관을 자랑한다. 

강경은 한일은행 강경지점, 강경노동조합, 강경 연수당 한약방, 강경성결교회, 강경상고 관사, 강경화교학교, 강경중앙초등학교 강당 등 근대역사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다. 

이에 논산시는 조선 3대 시장으로 번성했던 상업의 중심지, 종교적 성지, 역사문화 가치를 보존하고 재창조하기 위해 근대역사문화거리를 조성하고 있다.

한편, 공전의 최고 히트작이었던 『미스터 선샤인』에서 조선시대 최고의 명문가 애기씨는 “나의 낭만은 차가운 총구 안에 있을 뿐”이라며 “독립된 조국에서 다시 만나자”던 작별인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미스터 션샤인 주촬영지인 선샤인랜드는 1900년 전후의 의병이야기가 이어지는데, 동학혁명 이야기인 ‘녹두꽃’까지 촬영장으로 활용하면서 그 유명세를 더해가고 있다.

 

[6·25] 아, 대둔산 혈투와 반공포로들

논산 11경 중 하나인 대둔산은 대한민국 역사의 아린 상처들 안고 있는 곳 중 하나이다. 6·25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으로 퇴로가 막힌 북한군은 지리산과 대둔산 등으로 들어가 길고도 긴 장기전을 벌였다. 6·25전쟁이 휴전이 된 후에도 대둔산에 숨어 들어간 공비들은 900일간 관공서 습격과 민간인 약탈 및 학살을 감행했다. 당시 대둔산 토벌 작전에서 1,500여 명의 군과 경찰이 희생되었다.

또한, 6·25전쟁 발발 직후 강경경찰서 정성봉 서장 등 83인의 경찰관이 북한군 주력부대를 맞아 장렬한 전사를 하였다. 이 전투는 패한 것처럼 보이지만 북한군의 진격을 3일간 저지하여 낙동강 전선을 구축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만들어준 것이 6·25 전쟁사에서 의미가 큰 전투로 기록되고 있다. 그때의 상황을 말해주는 기념비가 경찰서 정문에 세워져 있다.

6·25전쟁 당시 연무에는 북한군 포로수용소가 있어 약 1만여 명의 포로가 수용돼 있었다. 한국을 제외하고 유엔군과 북한군이 휴전 협상을 하면서 반공포로들을 모두 북한으로 돌려보내려 하자, 이승만 대통령은 방첩대를 시켜 반공포로를 탈출시키는 작전을 실행하게 된다. 이때 연무 포로수용소에서 약 8천 명 이상의 반공포로가 도망을 쳐서 민가에서 숨어 지내다가 많은 이들이 논산에 머물며 거주를 하게 되었다. 향후 논산에 남은 반공포로들이 이승만 대통령의 추모비를 건립하였는데, 현재 관촉사 화장실 뒤편에 초라한 모습으로 세워져 있다.

여기서 대둔산 맑은 물이 모여 만들어진 탑정호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동양 최대 최장의 600m 출렁다리와 수변데크길, 딸기테마파크와 딸기향농촌테마공원은 힐링과 수상 레포츠의 메카로 부상하고 있다.



- 전영주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