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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선 곳에서 맞는 아침’, 구본형의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에 나오는 첫 제목이다. 27일 서울 C&P에서는 1박2일로 김홍신문학관을 방문하였다. 여행의 중심점은 김홍신 작가와 문학관이었지만, 1박은 공주에서 한 후 논산으로 넘어온 것이다. ‘산아래’서 토속음식으로 점심을 한 그들의 최종코스는 명재고택이었다. 마침 문화재청장도 방문한 날이었다. <고택에서의 하룻밤> 듣기만 해도 설렌다. 논산 어디에 그런 거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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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에서 이색적인 숙소는 많아 보이지 않는다. 고정리종가집, 명재고택 같은 고택스테이나 템플스테이, 향교스테이 등은 소문이 자자한 거 같지 않다. 논산한달살기나 팸투어도 엇비슷해 보인다. 와중에 한옥마을과 양촌휴양림은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아져가는 추세다.
여행 선택의 주요기준 중 하나인 숙박. 논산에 의외의 숙박지가 하나 있다. 한국유교문화진흥원(이하·한유진)의 한옥연수원.
전통과 현대, 동서양이 ‘연결’되는 공간 컨넥터
평소 잘 열리지 않는 이곳이 6월에 손님을 두 번 맞았다. 13일 「아동중심 놀이·생태 한·일국제교류포럼」이 개최됐는데, 한·일 생태교육 교류 프로그램 중심으로 진행됐다. 16일에는 고양시 손님들을 맞았다. 고양문화원임원과 문화보존단체회원들 연수를 가진 것인데, 유람일지儒覽日誌 프로그램이다.

첫날 점심 후 한유진에 도착한 다음 맨 처음 안내받은 곳은 책가도(冊架圖) 그려보는 곳! 책가도는 책장을 그리는 민화인데, 한유진은 이를 현대화하여 문방구·도자기·과일·꽃·고동기(古銅器) 같은 기물들을 골라 본인 임의대로 편집 가능하도록 세팅해 놓은 것이다. 전통을 현대인의 자아 표현(Show Myself) 키워드와 연결한 국내외 최초의 시도로서 “나는 이런 사람이오”라는 표출의 캔버스다.
이어서 안내를 받은 전시관은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THE CONNECTOR : 세계관의 확장》 정약용이 “만물은 서로 이어져 있어, 내가 만물을 해치면 만물 또한 나를 해칠 것이다”라고 했는데, 바로 그 컨넥터, 연결이다. 전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1부는 영모화와 초충도(草蟲圖) 2부는 우주적 시선으로 자연을 바라본 영상, 3부는 런던과 취리히 배경으로 활동하는 엘리 허경란의 설치 작품이다.
전시장에서는 홍대용의 『의산문답』과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이 교차한다. 큐레이터 노트에는 “전시의 모든 글은 기획자의 성찰과 인공지능의 협업을 통해 완성되었다”고 밝힌다. 인간과 비인간의 연대도 서슴없는 기획자 박정언은 공존, 연결 가치를 측은지심, 즉 인(仁)으로 관통시키는 듯하다. 과거와 미래, 동양과 서양을 연결하는 융복합 특별전이지만 폭신한 융단방석에 마냥 누워있을 수만은 없다. 정재근 원장의 특강이 기다리고 있어서다.


논산 선비정신 배우고, 풍류에 취하다
정 원장은 유교의 현실적 캐릭터로 선비를 부각시켰다. <선비의 직職> 부제 “공직가치와 선비정신”로 진행된 강의는 “유교=진부·고리타분·지루”라는 선입관을 깨면서 시작되었고, 특강 후 질문 시간이 이어지면서 주어진 시간 90분이 모자랄 정도였다.
유교 아닌 불교이야기로 시작하였고, 파평윤씨는 우리나라에서 인구 비율당 대과급제를 가장 많이 한 집안이라고 소개하였다. 윤돈이 문화유씨와 혼사를 맺었을 당시 광산김씨가 논산에서 최고의 명문가였는데, 논산이 득윤(得尹) 이후 조선의 역사는 두 곳에서 이루어졌다고 설파한다. 한양 조정이 한 축이었다면, 김장생, 송준길 송시열 윤증 등 거유들이 국사 논하고 논쟁했던 논산이 또다른 축이었다고. 그러면서 정인지의 후손인 본인 하동정씨의 단군애사도 곁들였다. 율곡의 철학과 사상을 계승한 데가 논산의 유교문화진흥원이라면서 향후 비전도 제시하였다.
이어 조선시대사를 전공한 김주호 책임연구원이 바통을 이어갔다. 호를 지어보기 전 길라잡이격인 <선비의 호號> 강의에는 현대 인물까지 등장하였다. 호가 지명이어도 좋다며, 한호는 석봉산 아래여서 석봉, 유성룡은 하회마을 서쪽언덕여서 西厓, 정주영은 살던 동네가 아산여서 아산병원 등등.... 숱한 사례 접한 후 각자의 호를 지었다. 이 naming 역시 ‘내가 나를 정의하는 시간’이 되었고, 이는 선비회원 가입과 다짐의 시간으로 자연스레 이어져갔다.
유람일지 프로그램 6월 첫번째 교육대상은 충남인재개발원 120명이었다. 두 번째인 고양문화원은 40여명인데, 특별공연은 이들을 위해서도 마련되었다. 한유진의 선비시리즈는 선비의 迎~職~生(더 커넥터)~號~茶~樂으로 흘러가는데, 피날레인 락樂은 퓨전국악공연.
이음마루 공간에서 ‘풍류살롱-앙상블 수’와 마주쳤다. 로비 공간에 체임버 악단이 꾸려졌다. 퓨전으로 연주된 곡은 모두 네 곡, 풍류살롱, 캐논변주곡, 아리랑랩소디, 고향의봄에 한유진이 격조높은 콘서트장으로 변하는 시간이다. 가야금 허지혜, 해금 이지인, 첼로 김재경, 드럼 이용민, 건반 김강민, 경기민요 김진영으로 편성됐는데. “가장 큰 박수는 늘 드럼에게 돌아가곤 해 서운하다”는 허 단장의 예고편에도 청중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귀호강 실컷 한 풍류 화랑의 후예들이 문을 나서 마실간 곳은 5분 거리 명재고택! 노거수가 도열해 있는 언덕바지로 올라가 탁 트인 앞마당을 내려다 본다. 인간드론의 조감도는 심미안 틔워주기에 충분한 각. 양반가에 대문과 담이 없는 이유, 노론소론 출발점 등 역사이야기 설왕설래한 다음, 저녁은 시내로 나가서 해결했다. 식후 되돌아와서 찻자리, 막걸리판 펼친 곳은 한옥연수원 관리동이었다. 대도시 탈출의 해방구, 특히 문화보존단체 회원들은 물 만난 고기였지만, 9시에는 막을 내렸다, 이른 기상을 위해!

한옥집에서의 하룻밤, 서까래 올려보고 주련 글씨도 읊조리면서 선조의 지혜를 되새김질해보는 동안 소집령이 내린다. 아침산책 시간이다. 논산비경 중 하나가 호암산 종학당에서 내려다 보는 병사리저수지! 물길따라 산책로가 있고, 맨발걷기도 가능한 ‘동토사색의 길’도 기다리고 있다. 종학당 사색의 길 따라가다 보면 활터도 숨어있지만, 그러기에 아침 자유시간은 짧기만 하다, 아침은 해장국이니까^
은진미륵 미소에서 김홍신문학관 태징의 여운
장군해장국집에서 해장한 다음에 향한 곳은 관촉사! 동양최대의 미륵불 은진미륵이 좌정한 곳이다. 해설사가 없어 약식해설로 끝나나 싶었는데, 강상 출신의 회원이 나와서 보충설명을 한다, 논산 출신들 이야기도 곁들이면서.


일부가 삼성각까지 올라가 본 다음, 하산은 후문쪽으로 하였다. 버스는 이내 김홍신문학관에 도착하였다. 목적지에 내리자마자 사진으로 점 찍고 이내 떠나는 관광버스도 적잖다. 고양문화원은 느긋했다. 휴식처로 작정하기로 한 양 두어 시간 머물며 해설도 충분히 듣고 국내 최대의 징 앞에서 기원하며 타징의 여운을 느꼈다. 카페가 있는 문학관이 드문데, 널럴 공간에서 차 나누며 담소 즐기노라니 어느덧 점심시간!
예약 식당은 탑정호 상류인 평매마을쪽이다. 문학관에서는 영상으로 동양최장의 탑정호 출렁다리와 절경을 미리보기 했던 터라, 수변도로 따라가면 수미상관이겠다 싶었다. 그런데 웬 걸? 버스는 물을 피해 동양최대 선인장농원인 청유리원쪽으로 향하더니만 함적리쪽으로 하여 크게 돌았다. 길은 늘 일장일단이기는 한데 버스가 농로 접어들면서 사달이 벌어졌다. 가야곡면 산노리 평매마을은 과일천국이다. 과수원 사이사이로 길이 났다고나 할까? 나뭇가지가 길가로도 뻗어나오기 일쑤.
대형버스로서는 정면돌파가 어려운 난코스라고 판단이 들자 문화원장과 사무국장이 내려 하늘길 걷어내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겨우 통과하여 도착한 매운탕집 ‘수정가든’. 붕어찜이 씨래기와 함께 끓는 동안, 논산의 특미인 ‘왕주’가 도착했다. 주류반입이 되니마니 실랑이 벌였던 식당측은 식후 즈음 “딸기쨈과 마늘도 있다”면서 농산물 홍보대사로 자처한다.
이래저래 시간이 지체되면서 마음 급해진 로컬가이드가 운전석에 다가가 귓속말을 한다. “돈암서원까지는 여기서 제가 안내할까요?” OK라는 답이 돌아오지 않은 채 발차했다. 내비게이션은 이번에도 탑정호 물을 멀찌감치 피해 한참 북진한 다음 다시 남행하면서 돈암서원을 노크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했지만, 여기 목적지가 어디인가? 명실공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돈암서원 아니던가. 초입에서 앵두가 빨간 입술로 도회지 사람들을 유혹하는 통에 시간이 더 늦어졌는데, 6월 뙤약볓에도 의관정제하고 기다리는 일군이 있었다. 서원에 왔으니 향사도 체험해 보도록 하기 위해서다. 문화원장을 비롯한 몇이 급하게 옷 갈아입고 제관으로 섰다. 향사는 서원 맨 위쪽인 유경사에서 진행하였는데 약식으로 하는 데도 삼사십 분 걸린 듯하다.



속세 피해 초야에서 빛나는 돈암서원
돈암서원에 대한 해설사로, 김선의 원장이 직접 나섰다. 올해 춘향에서 초헌관은 김홍신 작가, 아헌관은 남상원 아이디앤플래닝그룹회장이었는데, 이들 부탁으로 해설하러 나온 것이라며 환영사를 가름했다. “원래 돈암서원은 사계(연산천)쪽에 있었지만 수해를 피해 이곳으로 이전한 경우”라며, 이것이 유네스코 심사에 적잖은 걸림돌이 되었지만 서원 오픈과 활용 등 여러 진정성이 인정을 받아 통과되었다며 “수많은 이들이 드나듦으로써 저절로 빛나는 이 응도당 마루바닥을 보시라” 권한다.
돈암서원의 이름도 임리마을 돼지바위 돈豚에서 유래했다기보다 『주역』제33괘 천산돈(天山遯), 즉 ‘세상을 피해 은거하다’는 둔(遯)쪽으로 정의를 내린다. 조선조에서는 관직 나가는 것보다 지방에서 후학 양성하는 게 더 영예로웠다면서, 사계 김장생 선생이 세운 서원을 비롯하여 대원군 때 서원의 수난사 등등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원장 직강으로 들으니 시야가 한창 넓어지는 듯하다. 돈암서원 자랑 중 하나가 너른 마당이다. 이 넓음은 이웃하고 있는 한옥마을로도 이어진다. 웰니스 프로그램인 ‘한옥에서의 휴식’이 5~6월에 이루어졌다. 고양문화원팀이 돈암서원에서 머문 시간은 한시간 안팎이다. 좀더 여유를 가지고 솔바람길 거닌다든지 한옥마을 체험 해보면 논산을 좀더 느끼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따른다.
고양시 윗동네인 파주에는 율곡의 자운서원, 화석정 등이 있다. 파주 율곡리는 아버지 이원수의 본향인데, 이이의 호 율곡이 여기서 나온 모양이다. 율곡은 논산 김장생 선생의 스승이다. 한편, 논산 연산면에는 고양리, 백석리가 있다. 이문열의 소설에도 등장하는 지명인데, 고양시에는 백석동이 있다. 물론 이런 현상은 우연일 뿐이다. 그러나 “만물은 서로 이어져 있다”는 ‘더 커넥터’ 전시회 화두가 떠오르면서, “그 이음이 두 도시에 적용된다면?”에 생각이 미친다.
생각은 시민간의 민간외교가 지자체의 MOU로 발전 확장되면서, 홈스테이 등으로 번지면서 8경관광보다 인문학적인 역사여행, 사람여행을 겸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꼬리를 문다. 낯섬이, 실은 익숙함의 또다른 얼굴임을 느껴보게끔.
- 이진영 편집위원
논산에서 이색적인 숙소는 많아 보이지 않는다. 고정리종가집, 명재고택 같은 고택스테이나 템플스테이, 향교스테이 등은 소문이 자자한 거 같지 않다. 논산한달살기나 팸투어도 엇비슷해 보인다. 와중에 한옥마을과 양촌휴양림은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아져가는 추세다.
여행 선택의 주요기준 중 하나인 숙박. 논산에 의외의 숙박지가 하나 있다. 한국유교문화진흥원(이하·한유진)의 한옥연수원.
전통과 현대, 동서양이 ‘연결’되는 공간 컨넥터
평소 잘 열리지 않는 이곳이 6월에 손님을 두 번 맞았다. 13일 「아동중심 놀이·생태 한·일국제교류포럼」이 개최됐는데, 한·일 생태교육 교류 프로그램 중심으로 진행됐다. 16일에는 고양시 손님들을 맞았다. 고양문화원임원과 문화보존단체회원들 연수를 가진 것인데, 유람일지儒覽日誌 프로그램이다.
첫날 점심 후 한유진에 도착한 다음 맨 처음 안내받은 곳은 책가도(冊架圖) 그려보는 곳! 책가도는 책장을 그리는 민화인데, 한유진은 이를 현대화하여 문방구·도자기·과일·꽃·고동기(古銅器) 같은 기물들을 골라 본인 임의대로 편집 가능하도록 세팅해 놓은 것이다. 전통을 현대인의 자아 표현(Show Myself) 키워드와 연결한 국내외 최초의 시도로서 “나는 이런 사람이오”라는 표출의 캔버스다.
이어서 안내를 받은 전시관은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THE CONNECTOR : 세계관의 확장》 정약용이 “만물은 서로 이어져 있어, 내가 만물을 해치면 만물 또한 나를 해칠 것이다”라고 했는데, 바로 그 컨넥터, 연결이다. 전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1부는 영모화와 초충도(草蟲圖) 2부는 우주적 시선으로 자연을 바라본 영상, 3부는 런던과 취리히 배경으로 활동하는 엘리 허경란의 설치 작품이다.
전시장에서는 홍대용의 『의산문답』과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이 교차한다. 큐레이터 노트에는 “전시의 모든 글은 기획자의 성찰과 인공지능의 협업을 통해 완성되었다”고 밝힌다. 인간과 비인간의 연대도 서슴없는 기획자 박정언은 공존, 연결 가치를 측은지심, 즉 인(仁)으로 관통시키는 듯하다. 과거와 미래, 동양과 서양을 연결하는 융복합 특별전이지만 폭신한 융단방석에 마냥 누워있을 수만은 없다. 정재근 원장의 특강이 기다리고 있어서다.
논산 선비정신 배우고, 풍류에 취하다
정 원장은 유교의 현실적 캐릭터로 선비를 부각시켰다. <선비의 직職> 부제 “공직가치와 선비정신”로 진행된 강의는 “유교=진부·고리타분·지루”라는 선입관을 깨면서 시작되었고, 특강 후 질문 시간이 이어지면서 주어진 시간 90분이 모자랄 정도였다.
유교 아닌 불교이야기로 시작하였고, 파평윤씨는 우리나라에서 인구 비율당 대과급제를 가장 많이 한 집안이라고 소개하였다. 윤돈이 문화유씨와 혼사를 맺었을 당시 광산김씨가 논산에서 최고의 명문가였는데, 논산이 득윤(得尹) 이후 조선의 역사는 두 곳에서 이루어졌다고 설파한다. 한양 조정이 한 축이었다면, 김장생, 송준길 송시열 윤증 등 거유들이 국사 논하고 논쟁했던 논산이 또다른 축이었다고. 그러면서 정인지의 후손인 본인 하동정씨의 단군애사도 곁들였다. 율곡의 철학과 사상을 계승한 데가 논산의 유교문화진흥원이라면서 향후 비전도 제시하였다.
이어 조선시대사를 전공한 김주호 책임연구원이 바통을 이어갔다. 호를 지어보기 전 길라잡이격인 <선비의 호號> 강의에는 현대 인물까지 등장하였다. 호가 지명이어도 좋다며, 한호는 석봉산 아래여서 석봉, 유성룡은 하회마을 서쪽언덕여서 西厓, 정주영은 살던 동네가 아산여서 아산병원 등등.... 숱한 사례 접한 후 각자의 호를 지었다. 이 naming 역시 ‘내가 나를 정의하는 시간’이 되었고, 이는 선비회원 가입과 다짐의 시간으로 자연스레 이어져갔다.
유람일지 프로그램 6월 첫번째 교육대상은 충남인재개발원 120명이었다. 두 번째인 고양문화원은 40여명인데, 특별공연은 이들을 위해서도 마련되었다. 한유진의 선비시리즈는 선비의 迎~職~生(더 커넥터)~號~茶~樂으로 흘러가는데, 피날레인 락樂은 퓨전국악공연.
이음마루 공간에서 ‘풍류살롱-앙상블 수’와 마주쳤다. 로비 공간에 체임버 악단이 꾸려졌다. 퓨전으로 연주된 곡은 모두 네 곡, 풍류살롱, 캐논변주곡, 아리랑랩소디, 고향의봄에 한유진이 격조높은 콘서트장으로 변하는 시간이다. 가야금 허지혜, 해금 이지인, 첼로 김재경, 드럼 이용민, 건반 김강민, 경기민요 김진영으로 편성됐는데. “가장 큰 박수는 늘 드럼에게 돌아가곤 해 서운하다”는 허 단장의 예고편에도 청중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귀호강 실컷 한 풍류 화랑의 후예들이 문을 나서 마실간 곳은 5분 거리 명재고택! 노거수가 도열해 있는 언덕바지로 올라가 탁 트인 앞마당을 내려다 본다. 인간드론의 조감도는 심미안 틔워주기에 충분한 각. 양반가에 대문과 담이 없는 이유, 노론소론 출발점 등 역사이야기 설왕설래한 다음, 저녁은 시내로 나가서 해결했다. 식후 되돌아와서 찻자리, 막걸리판 펼친 곳은 한옥연수원 관리동이었다. 대도시 탈출의 해방구, 특히 문화보존단체 회원들은 물 만난 고기였지만, 9시에는 막을 내렸다, 이른 기상을 위해!
한옥집에서의 하룻밤, 서까래 올려보고 주련 글씨도 읊조리면서 선조의 지혜를 되새김질해보는 동안 소집령이 내린다. 아침산책 시간이다. 논산비경 중 하나가 호암산 종학당에서 내려다 보는 병사리저수지! 물길따라 산책로가 있고, 맨발걷기도 가능한 ‘동토사색의 길’도 기다리고 있다. 종학당 사색의 길 따라가다 보면 활터도 숨어있지만, 그러기에 아침 자유시간은 짧기만 하다, 아침은 해장국이니까^
은진미륵 미소에서 김홍신문학관 태징의 여운
장군해장국집에서 해장한 다음에 향한 곳은 관촉사! 동양최대의 미륵불 은진미륵이 좌정한 곳이다. 해설사가 없어 약식해설로 끝나나 싶었는데, 강상 출신의 회원이 나와서 보충설명을 한다, 논산 출신들 이야기도 곁들이면서.
일부가 삼성각까지 올라가 본 다음, 하산은 후문쪽으로 하였다. 버스는 이내 김홍신문학관에 도착하였다. 목적지에 내리자마자 사진으로 점 찍고 이내 떠나는 관광버스도 적잖다. 고양문화원은 느긋했다. 휴식처로 작정하기로 한 양 두어 시간 머물며 해설도 충분히 듣고 국내 최대의 징 앞에서 기원하며 타징의 여운을 느꼈다. 카페가 있는 문학관이 드문데, 널럴 공간에서 차 나누며 담소 즐기노라니 어느덧 점심시간!
예약 식당은 탑정호 상류인 평매마을쪽이다. 문학관에서는 영상으로 동양최장의 탑정호 출렁다리와 절경을 미리보기 했던 터라, 수변도로 따라가면 수미상관이겠다 싶었다. 그런데 웬 걸? 버스는 물을 피해 동양최대 선인장농원인 청유리원쪽으로 향하더니만 함적리쪽으로 하여 크게 돌았다. 길은 늘 일장일단이기는 한데 버스가 농로 접어들면서 사달이 벌어졌다. 가야곡면 산노리 평매마을은 과일천국이다. 과수원 사이사이로 길이 났다고나 할까? 나뭇가지가 길가로도 뻗어나오기 일쑤.
대형버스로서는 정면돌파가 어려운 난코스라고 판단이 들자 문화원장과 사무국장이 내려 하늘길 걷어내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겨우 통과하여 도착한 매운탕집 ‘수정가든’. 붕어찜이 씨래기와 함께 끓는 동안, 논산의 특미인 ‘왕주’가 도착했다. 주류반입이 되니마니 실랑이 벌였던 식당측은 식후 즈음 “딸기쨈과 마늘도 있다”면서 농산물 홍보대사로 자처한다.
이래저래 시간이 지체되면서 마음 급해진 로컬가이드가 운전석에 다가가 귓속말을 한다. “돈암서원까지는 여기서 제가 안내할까요?” OK라는 답이 돌아오지 않은 채 발차했다. 내비게이션은 이번에도 탑정호 물을 멀찌감치 피해 한참 북진한 다음 다시 남행하면서 돈암서원을 노크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했지만, 여기 목적지가 어디인가? 명실공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돈암서원 아니던가. 초입에서 앵두가 빨간 입술로 도회지 사람들을 유혹하는 통에 시간이 더 늦어졌는데, 6월 뙤약볓에도 의관정제하고 기다리는 일군이 있었다. 서원에 왔으니 향사도 체험해 보도록 하기 위해서다. 문화원장을 비롯한 몇이 급하게 옷 갈아입고 제관으로 섰다. 향사는 서원 맨 위쪽인 유경사에서 진행하였는데 약식으로 하는 데도 삼사십 분 걸린 듯하다.
속세 피해 초야에서 빛나는 돈암서원
돈암서원에 대한 해설사로, 김선의 원장이 직접 나섰다. 올해 춘향에서 초헌관은 김홍신 작가, 아헌관은 남상원 아이디앤플래닝그룹회장이었는데, 이들 부탁으로 해설하러 나온 것이라며 환영사를 가름했다. “원래 돈암서원은 사계(연산천)쪽에 있었지만 수해를 피해 이곳으로 이전한 경우”라며, 이것이 유네스코 심사에 적잖은 걸림돌이 되었지만 서원 오픈과 활용 등 여러 진정성이 인정을 받아 통과되었다며 “수많은 이들이 드나듦으로써 저절로 빛나는 이 응도당 마루바닥을 보시라” 권한다.
돈암서원의 이름도 임리마을 돼지바위 돈豚에서 유래했다기보다 『주역』제33괘 천산돈(天山遯), 즉 ‘세상을 피해 은거하다’는 둔(遯)쪽으로 정의를 내린다. 조선조에서는 관직 나가는 것보다 지방에서 후학 양성하는 게 더 영예로웠다면서, 사계 김장생 선생이 세운 서원을 비롯하여 대원군 때 서원의 수난사 등등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원장 직강으로 들으니 시야가 한창 넓어지는 듯하다. 돈암서원 자랑 중 하나가 너른 마당이다. 이 넓음은 이웃하고 있는 한옥마을로도 이어진다. 웰니스 프로그램인 ‘한옥에서의 휴식’이 5~6월에 이루어졌다. 고양문화원팀이 돈암서원에서 머문 시간은 한시간 안팎이다. 좀더 여유를 가지고 솔바람길 거닌다든지 한옥마을 체험 해보면 논산을 좀더 느끼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따른다.
고양시 윗동네인 파주에는 율곡의 자운서원, 화석정 등이 있다. 파주 율곡리는 아버지 이원수의 본향인데, 이이의 호 율곡이 여기서 나온 모양이다. 율곡은 논산 김장생 선생의 스승이다. 한편, 논산 연산면에는 고양리, 백석리가 있다. 이문열의 소설에도 등장하는 지명인데, 고양시에는 백석동이 있다. 물론 이런 현상은 우연일 뿐이다. 그러나 “만물은 서로 이어져 있다”는 ‘더 커넥터’ 전시회 화두가 떠오르면서, “그 이음이 두 도시에 적용된다면?”에 생각이 미친다.
생각은 시민간의 민간외교가 지자체의 MOU로 발전 확장되면서, 홈스테이 등으로 번지면서 8경관광보다 인문학적인 역사여행, 사람여행을 겸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꼬리를 문다. 낯섬이, 실은 익숙함의 또다른 얼굴임을 느껴보게끔.
- 이진영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