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0주년 특집] 오페라마 <인생사용설명서>, 논산에서 피어난 문화의 기적

2026-06-25

김홍신 등단 50주년·놀뫼신문 창간 20주년 기념무대… 문학과 음악이 만난 ‘삶의 해설서’






지난 6월 20일, 건양대학교 콘서트홀은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었다.

그곳은 문학과 음악, 국악과 클래식, 웃음과 눈물, 지역과 세계가 만나는 거대한 인문학의 무대였다.

놀뫼신문 창간 20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오페라마 <인생사용설명서>가 전석 매진의 열기 속에 성황리에 막을 올렸다. 대한민국 문학의 거장 김홍신 작가의 저서 『인생사용설명서』를 바탕으로, 오페라마 창시자인 바리톤 정경 교수가 새롭게 무대화한 이번 공연은 지역 문화예술계에 의미 있는 이정표를 남겼다.

무엇보다 이번 공연은 김홍신 작가 등단 50주년, 놀뫼신문 창간 20주년, 그리고 김홍신 작가의 고향 논산이라는 상징성이 겹쳐지며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 수도권 대형 공연장이 아닌 지방 도시 논산에서, 10만 원·15만 원대 티켓을 시민들이 직접 구매해 객석을 가득 채운 장면은 지역 문화의 가능성을 다시 확인시킨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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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잠시 쉼표를 찍는 날”


이날 사회를 맡은 김미숙 아나운서는 공연의 문을 열며 “오늘은 우리 삶에 잠시 쉼표를 찍는 날”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글이 가진 묵직한 힘과 음악의 전율이 하나로 융합되는 순간 속에서 각자의 가슴 속에 숨겨진 인생 사용 설명서를 발견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공연 전 객석에는 휴대전화 무음, 공연 중 이동 자제, 사진·동영상 촬영 및 녹음 금지 등 공연 에티켓 안내가 이어졌다. 2층 객석에는 학생들도 다수 자리해 세대를 아우르는 관객 구성이 눈길을 끌었다. 이날 공연장은 문학을 기억하는 중장년층, 지역 문화에 관심을 가진 시민들, 그리고 새로운 예술 장르를 경험하려는 청소년들이 함께한 세대 통합의 공간이었다.

본격적인 공연에 앞서서는 한국무용가 이소정과 이소정무용단(한효설, 이혜선, 변서연, 진율하, 이세영, 이은서, 백은애, 안나현)이 무대에 올라 나라의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전통춤 '태평무'를 선보이며 공연의 품격을 높였다. 장중하면서도 우아한 춤사위는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서곡이자, 문학과 음악이 어우러질 오페라마의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다.


“김홍신의 철학, 정경의 오페라마를 만나다”


이번 무대의 핵심은 김홍신 작가의 철학과 바리톤 정경의 예술적 해석이 만났다는 점이다.

정경 교수는 공연 초반 오페라마의 의미를 설명하며 “오페라는 이탈리아에서 왔고, 드라마는 미국에서 시작됐다. 오페라마는 두 장르를 융합해 대한민국에서 시작된 장르”라고 밝혔다. 정 교수는 “선진국은 장르를 만들고 후진국은 콘텐츠를 채운다는 사실을 깨닫고 오페라마를 만들었다”며, 오페라마가 단순한 공연 형식이 아니라 한국형 예술 플랫폼임을 강조했다.

특히 이번 <인생사용설명서>는 정경 교수가 그동안 선보여온 오페라마 가운데 일곱 번째 작품이자, 현존 작가의 저서를 바탕으로 만든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정 교수는 “슈베르트, 모차르트, 베토벤 등 이미 세상을 떠난 작곡가를 다룬 작품은 부담이 덜했지만, 살아 있는 작가의 정신을 무대화하는 것은 엄청난 창작의 고통이었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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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개의 질문으로 풀어낸 인생의 무대


공연은 『인생사용설명서』에 담긴 여러 질문 가운데 네 가지 핵심 주제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첫 번째는 ‘모두를 위해 무엇을 찾겠습니까’, 두 번째는 ‘누구와 함께 하시겠습니까’, 세 번째는 ‘어떻게 마음을 다스리겠습니까’, 네 번째는 ‘당신은 누구십니까’였다.

정경 교수는 이 질문들을 각각 ‘Find’, ‘Together’, ‘Control’, ‘Who’라는 키워드로 풀어내며 음악과 해설, 자신의 삶의 경험을 결합했다. 드보르자크의 ‘신세계로부터’를 통해 낯선 세계로 나아가는 용기와 창조의 의미를 설명했고, 현충일 기념곡 ‘충혼가’를 통해 고통과 억울함을 넘어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이야기했다.

정 교수는 김홍신 작가의 문장을 인용하며 “세상은 늘 고통을 나눠주지만, 그 고통은 사람에게 강한 생명력을 준다”고 전했다. 또 “내가 원하는 것 100개 중 한두 개만 이루어져도 성공한 인생”이라는 김 작가의 메시지를 통해 관객들에게 자기 삶을 돌아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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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창 지현아, 국악의 깊이와 흥을 더하다


이날 무대에는 제24회 대한민국 빛고을 기악대제전에서 가야금 병창으로 명인부 종합대상에 선정돼 대통령상을 수상한 지현아 명창도 함께했다. 지현아 명창은 판소리 춘향가 중 ‘쑥대머리’를 통해 옥중 춘향의 절절한 심정을 전했고, 이어 제주 민요 ‘너영나영’으로 관객과 함께 호흡했다.

정경 교수는 지현아 명창과의 대화를 통해 ‘함께한다는 것’의 의미를 풀어냈다. 지현아 명창은 “국악은 모두가 더불어 즐기는 장르”라며 “매 순간 함께 즐겨주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공연 중간중간 정경 교수 특유의 유머는 객석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진지한 철학적 질문과 묵직한 음악 사이에 관객을 웃게 만드는 에피소드가 이어지며, 오페라마는 어렵고 무거운 클래식이 아니라 관객과 대화하는 살아 있는 공연으로 다가갔다.


논산아리랑, 고향에서 울린 김홍신의 노래


공연의 절정은 김홍신 작가가 직접 작사한 ‘논산아리랑’이었다. 논산의 자연과 정서를 담은 노랫말은 김 작가의 고향 사랑을 고스란히 전했다.

정경 교수는 “김홍신 선생님의 고향 논산에서 <인생사용설명서>를 처음 발표하게 된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라며 “아드님의 결혼식에 온 하객들에게 선물하고자 쓴 책이 오늘의 무대를 가능하게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인생사용설명서』는 김홍신 작가가 아들의 결혼식 하객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짧은 기간 안에 집필한 책으로 알려져 있다. 한 개인의 가족사에서 출발한 책이 시간이 지나 문학작품이 되고, 다시 오페라마라는 새로운 예술 장르로 확장된 것이다.

특히 '논산아리랑' 무대에서는 이소정무용단이 역동적인 군무를 펼치며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논산의 자연과 삶의 정서를 담은 노랫말에 전통무용이 더해지면서 무대는 한 편의 서사시처럼 완성됐고, 한국적 아름다움과 지역의 정체성을 동시에 담아낸 인상적인 장면으로 관객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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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신 “이 작품은 이제 정경 교수의 예술”


공연 말미에는 김홍신 작가가 직접 무대에 올라 관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김 작가는 “오늘은 제 무대가 아니라 정경 교수와 지현아 명창의 무대였다”며 “제가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은 김홍신문학관을 만들어준 분들, 논산 시민들, 그리고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의 공덕”이라고 말했다.

김홍신 작가는 정경 교수에게 작품 제작 과정에서 별도의 주문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작품은 제 것이지만, 그것을 무대화하면 이제는 그 예술가의 작품”이라며 “영화나 드라마, 공연으로 만들어질 때 저는 일체 간섭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인생사용설명서』에 대해 “아들 결혼식에 오신 분들에게 식사대접 대신 책을 나눠드리고 싶어 급하게 쓴 책이었다”며 “그 책이 이렇게 새로운 작품으로 태어날 줄은 몰랐다”고 소회를 밝혔다.

김 작가는 또 “오늘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을 위해 앞으로 100일간 기도하겠다”고 말해 관객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지역을 넘어 전국, 세계를 향한 가능성


이번 공연은 단순히 한 작가의 등단 5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 머물지 않았다. 김홍신 작가는 앞서 방송 인터뷰에서도 “K-컬처가 세계를 흔들듯이 오페라마도 세계화할 수 있다”며 “외국어로 만들어 세계를 놀라게 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정경 교수는 이 말을 두고 “저의 그릇은 국내였지만, 선생님의 시야는 이미 세계를 향해 있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김홍신이라는 충청이 배출한 어른의 정신을 논산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나아가 세계로 확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다”고 밝혔다.

이 대목은 이번 공연이 지역 공연의 성과를 넘어, 지역 문화 콘텐츠가 세계적 예술 장르로 확장될 수 있다는 상징적 메시지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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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인사 대거 참석… 지역 문화행사의 위상 높여


이날 공연에는 각계 주요 인사들도 대거 참석했다.

박수현 충남도지사 당선인, 이병도 충남교육감 당선인, 황명선·조승래·박범계·장종태·장철민 국회의원, 이경재 4대 방송통신위원장, 송영무 전 국방부 장관, 우동기 초대 지방시대위원회 위원장, 김석진 8대 방송통신위원장, 장동석 대한노인회 상임이사, 김용기 민주시민정치아카데미 이사장, 정재근 한국유교문화진흥원장 등이 자리를 함께했다.

또 윤은기 백소회 회장, 한영실 전 숙명여대 총장, 김양홍 법무법인 서호 대표변호사, 송민호·김하일 카이스트 교수, 박영희 동국대 교수, 정희선 숙명여대 교수, 정원희 건양대 교수, 강남 차병원 김문영 교수, 신평식 넥스트정책연구원장 등 법·교육계 인사와 김선길 한국산림문학회 이사장, EBS 류남이 수석, 서혜정 성우, 박흥식 영화감독, 장태희 가수 등 문학·예술·방송계 인사들도 참석했다.

경제계에서는 이경수 코스맥스 회장, 남상원 아이디앤플래닝그룹 회장, 안정자 바로나코스메틱 회장, 전무성 ㈜비엔 대표, 유재중 ㈜KS신용정보 대표, 박무병 ㈜이지렌탈 대표, 박정기 ㈜유벤타사이언스 대표, 김성하 ㈜조엔 아카데미 대표, 최애화 오벨리스크By 회장, 김헬렌 에스텔라화장품 대표 등도 함께했다.

특히 박수현 충남도지사 당선인은 축사를 통해 “김홍신 선생님의 등단 5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며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한 놀뫼신문과 전영주 대표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김홍신 선생님이 지향해 온 사람 중심의 맑은 정신과 영혼을 함께 나누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전영주 대표 “논산 시민이 만든 기적”


공연 말미에는 놀뫼신문 전영주 대표도 무대에 올라 감사 인사를 전했다.

전 대표는 “오늘 공연이 가능했던 것은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이 표를 사주셨기 때문”이라며 “논산에서 10만 원, 15만 원짜리 티켓을 흔쾌히 구매해 주신 시민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김홍신 작가도 전 대표를 소개하며 “1000석 규모 공연장을 빌려 논산에서 이 공연을 성사시킨 사람”이라며 “처음에는 바보 같은 도전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이 객석을 가득 채웠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은 대형 기획사나 수도권 중심의 문화 인프라에 의존하지 않고 지역 언론과 지역민, 후원사, 예술가가 함께 만든 문화적 성취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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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권 기부로 이어진 따뜻한 마무리


이날 후원사 에어로케이항공이 제공한 해외 왕복 항공권은 김홍신 작가의 뜻에 따라 논산계룡교육지원청 이혜경 교육장에게 전달됐다. 정경 교수는 “김홍신 선생님께 드리는 생일 선물로 준비했지만, 2층에 학생들이 많이 와 있는 만큼 교육을 위해 쓰이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김 작가는 “받은 선물이니 제 마음대로 해도 되지 않겠느냐”며 항공권을 교육장에게 전달했다. 이혜경 교육장은 “지역의 큰 어르신이 전한 삶의 울림을 논산계룡 교육 가족과 함께 소중히 나누겠다”고 화답했다.


지방 소도시가 보여준 문화의 가능성


오페라마 <인생사용설명서>는 공연 이상의 의미를 남겼다.

이 무대는 지방 소도시에서도 수준 높은 문화예술 콘텐츠가 만들어질 수 있고, 시민들이 그 가치를 알아보고 직접 참여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논산에서 열린 이 공연은 문학의 힘, 음악의 감동, 지역의 연대가 결합하면 어떤 문화적 에너지가 만들어지는지를 증명했다. 김홍신 작가의 질문은 객석을 향해 던져졌고, 정경 교수의 음악은 그 질문에 예술로 답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어떻게 살아가시겠습니까.”

공연이 끝난 뒤에도 이 질문은 관객들의 마음속에 오래 남았다.

놀뫼신문 창간 20주년을 기념해 열린 오페라마 <인생사용설명서>는 논산이 만든 문화의 기적이자, 지역 문화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역사적인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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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민 기자 / 사진촬영 여병춘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