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인생노트] 장용덕 "내 나이 88세, 사는 날까지 '팔팔'해야죠"

놀뫼신문
2022-06-22

 [첫 번째 인생노트, 장용덕] 

내 나이 88세, 사는 날까지 '팔팔'해야죠



 후보들에게 단일화(丹一花) 꽃 달아주던 날


지난 제8회 지방선거 때 계룡시 국민의힘 후보원팀 필승결의대회가 열렸는데, 이대회를 구상하고 추진한 사람은 다름 아닌 88세의 장용덕 위원장이었다. 이날 행사장에는 30여 명의 발기인 대표도 자리를 함께 하였다. 그는 왜 이런 대회를 구상했으며, 어떤 저력으로 직능별 대표, 장성급 예비역 등 지역의 유력 인사 백여 명을 소집시켰을까?

이야기는 꼭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장위원장의 생활 거주지는 부산이었다. 1985년 봄, 26년간의 군 생활을 정리하고 대령으로 예편한다. 그로부터 10년간은 육군군수사령부에서 물자처장으로 공직생활을 이어간다. 36년의 공직 생활 후 58세에 사업을 시작한다. 두 번에 걸친 사업도 합하면 10여 년 했을까, 이제 서서히 일을 내려놓고 평소 즐기던 골프 등으로 노년생활을 시작했다.

골프 모임 중에는 그가 직접 만든 초우회(草友會)가 있었다. 잔디를 밟으며 우정을 다지는 동기생 골프 클럽이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사는 전우 12명이 부부동반으로 매달 한 번씩 계룡에서 모였다. 계룡은 대한민국 한복판인데다가 예비역들이 많이 사는 “골프8학군"으로 명성 이 자자해서다. 더구나 군 생활 때부터 산을 뛰어서 오르내릴 만큼 산을 좋아했던 그는 계룡산 아래 살고 싶었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아내가 원했고, 그렇게 계룡시에 정착하게 되었다. 

군인가족으로서 계룡에 와 살다 보니 주로 만나는 층이 예비역들이었다. 대부분 고액 연금소득자들이다 보니 주변일에 관심이 없고 뒷짐을 지는 분위기였다. 그러다가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사건이 벌어졌다. 보수 입장에서는 부당하다 느껴졌고 뭔가를 해야만 하겠다고 느껴졌다. 더구나 계룡은 “보수의 성지" 국방의 메카로 대한민국 안보의 중심이 아닌가? 그러나 막상 현실을 돌아보니 보수정치인은 별로 없고 애국시민단체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 ‘계룡나라사랑포럼’을 만들었고 다시 ‘태극기운동 본부’로 명칭 변경을 그리고 '자유시민연합'으로 이어저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인생은 창조하고 만드는 것"이라는 그의 지론대로 2016년 만들어진 이 단체는 현재 금종권 해군대령이 대표이며 장위원장은 상임고문으로 이번 행사 발기인 시민단체로 이름을 올렸다,



보수의 심장 계룡에서 선봉장으로 나서다.


이렇게 보수를 결집해가면서 필요하면 버스를 대절하였다. 처음에는 한 대, 나중에는 2~3대를 동원하여 만차로 서울에 올라갔다. 이때 그는 전광정 한국자유총연맹 고문을 만나 동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당시 전 고문은 부부동반으로 해서 기차타고 서울을 다녔던 개인 보수였다. 

이렇게 저렇게 보수를 규합한 장위원장은 2년 전 4‧15총선에서 캠프를 꾸려서 선대위원장으로 활동을 이어간다, 작년 상황을 보면 국민의힘 경선 이전에는 윤석열국민캠프 계룡시선대위원장을, 윤후보 확정 후에는 제20대 대선 계룡시총괄선대위원장 맡아 투표율 80.6%, 득표율 53.02%로 선전, 과거 계룡시에서 보기 드문 대 성과를 거두었다.

서울에서는 83세의 김종인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이 지휘봉을 쥐었다면 계룡에서는 88세의 장위원장이 대선을 총괄 지휘한 것이다. 관전 포인트 중의 하나는, 노익장들의 활약상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다.

이제는 바야흐로 6월 1일 지방선거다. 장 위원장은 대선의 여세를 몰아 국민의힘 후보가 다수 당선되도록 새 목표를 세웠다. 목표 달성을 위한 전략을 세우다 보니, 그 동안 계룡에서 보수당이 연전연패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아니, 필패의 이유는 삼척동자도 뻔히 알고 있었지만 그 방지책을 몰랐다. 방지책을 마련한다 한들 후보들의 이합집산에는 속수무책이었다.

해서 그는 '공동 서약'이란 발상을 했고 이를 즉각 실천에 옮겼다. 같은 이념의 당 후보들 모두 한자리에 모이게 해서 시민대표들이 다 함께 지켜보는 앞에서 '원팀 결의'를 다지고 그 증표로 합동공개 서명날인까지 하도록 장치한 것이다.



음악 교사가 군인의 길로


그가 이런 일을 추진할 때, 여러 사람들이 호응하고 따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의 국가관은 어느 날 불쑥 튀어나온 태도가 아니다. 군인 출신 대부분이 보수적인 애국관이지만, 그는 군인 이전에 교사였다. 현재 부산교대 전신인 부산사범대학 출신이다, 당시 부산사대는 유일하게도 음악과가 있었다. 이번 행사에도 '홀로아리랑' 합창 순서가 있었고 아코디언 반주에 따라 열창, 떼창이 이어졌다. 그의 음악적 재능은 1973년도에 개교한 남대전고등학교 교가 작곡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그러나 그의 교사생활은 8개월에 그친다. 군인의 길을 걷기 위해서다. 공주 정안 출신인 그는 6‧25 전 후 공주농고를 다녔다. 그때 선생님 두 분이 부임하셨다. 하동각, 이재만 선생님은 키가 크고 축구도 잘하여 학생들 사이에 선망의 대상이었다, 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학교를 떠나 육군종합학교를 거쳐 육군장교로 임관하였다. 그들을 롤 모델로 삼았던 장용덕 학생은 육군 OCS 과정을 거쳐 장교의 길로 접어든다. 1974년 육군 중령, 79년 대령, 85년 예편으로 4반세기 군생활을 마감한다.



노익장의 컴사랑, 나라사랑, 가족사랑


그의 두 번째 무기는 컴퓨터다. 그는 군 시절 70년대 중반부터 컴퓨터를 시작했다. 도스가 1983년경에 나왔으니 도스 이전의 세대다. 당시 군 전산실은 학교 교실 크기였다고 한다. 미국에서 임대한 덩치 큰 컴퓨터에 물자, 총포 부속 등 수십만 개를 분류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40여 년 다져온 그의 컴퓨터 실력은 조직관리에도 유용하게 활용된다. ‘후보원팀 필승결의대회’에 발기인으로 참여한 계룡시민은 160여 명에 달하는데 모두 모바일을 통해서 모집한 경우다.

그의 컴 실력은 족보 현대화의 새 길을 여는 데에도 일조하였다. 공직에서 떠난 그의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른 의무감은 그동안 소홀했던 집안일이었다. 그는 인동 장 씨다. 족보부터 살펴보니 뭐가 뭔지 이해가 잘 안 됐다. 세로 읽기부터가 걸림돌이었다. 한자를 한글로 풀어서 바꾸는 개조식 작업부터 착수했다. 필요한 한자는 괄호 안에 명기하고 종을 횡으로 바꾸는 작업을 하다 보니 3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다.

2011년 작업을 마친 후 대전 인쇄골목으로 가져갔더니 엑셀을 아래한글로 풀어서 가져오라 했고, 그런 우여곡절 끝에 “인동장씨제학공파세원공종중문보” 를 발행했다. 대전뿌리공원에 있는 족보박물관에도 가져가니 “함께 가져온 CD족보는 있었지만 횡 족보는 처음"이라며 의미 깊은 족보 기증식을 가졌다.

2012년, 그의 가족사랑은 가족묘 조성으로도 구체화되었다. 공주 사곡면 월가리에 종중산 13,000평 중 천 여평을 선정했다. 1750년대 공주에 뿌리를 내린 8대조 조상을 비롯, 선산 이곳저곳 흩어진 조상의 산소를 한 곳에 모시는 작업이었다. 부산 UN기념공원과 국립 현충원 등을 벤치마킹, 험산 지형지세에 따라 설계하고 작업하기를 반년, 아예 짐을 싸서 아내와 그곳에서 기거하며 가족묘원을 완성, 합동안장식까지 마쳤다. 70대 중반의 나이에 고생을 함께 해준 아내에게 늘 감사한다는 말로 끝을 맺는다.



‘적극적인 삶’ 그리고 글쓰기


이처럼 나보다는 이웃, 친척, 국가 공동체를 우선하다 보니 주변에 사람들도 자연스레 늘어났다. ‘이웃이나 친구들과 개인적으로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를 묻자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입니다. 공직에서 퇴직하면서 70살을 넘길 수 있을까 했는데...88세에도 내 신념을 펼치며 우리 고장과 나라를 위해 무엇인가 열심히 봉사하고 있지 않습니까? 건강하게요. 미래를 알 수 없는 인생이기에 더욱 아름다운 것이지요. 적극적인 삶을 살다 보면 건강은 뒤따라 오지요” 역시 건강의 비결은 정신력이다.

“이번 정치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가면 어떤 일에 주력할 것인지요?” 기자의 마지막 질문이다. 80세에 시작한 대전 둘레길 12코스(144km) 완주 도전. 아직 남은 2개 코스를 90이 되기 전에 완주하는 것과 ‘글쓰기’. 늦었지만 걸어온 길을 써보려 한단다. 88번 이상의, 아니 수천수만의 손길을 요하는 인생 항해 일지 작업이다. 

그간 기록은 그의 일상이었다. 계룡성당에 다니는 그는 성경필사를 컴퓨터로 3번을 완필 할 만큼, 독수리타 아닌 정타다. 그러나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 했던가. 컴 원로인 그가 작년에 랜섬웨어로 호되게 당했다. 그간의 자료가 몽땅 유실되면서 복구비도 어마 무시하지만 복구 장담도 못한다기에 포기를 했다. 그러나 ‘새로운 출발’이다. 영화화까지 된 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는 픽션이다. 이제 그에 버금가는 논픽션 하나가 계룡에서 어떻게 나올지, 그 귀추가 사뭇 주목된다.